[소설]8월의저편 411…낙원으로(28)

  • 입력 2003년 9월 4일 18시 15분


코멘트
“아편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이 좀 이상해진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잠옷을 제대로 여미지 않아 젖가슴도 아랫도리도 그대로 드러낸 채로, 한밤에 달을 올려다보면서 야마토, 야마토 하고 외쳤지.”

“자고 가는 장교 군복 입고 늪 쪽으로 걸어가다가 보초 서는 병사 총에 맞을 뻔한 적도 있고, 장작에 걸터앉아, 빨리 배를 대란 말이야, 야마토하고 같이 조선에 돌아갈거야 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아버지가, 이 더러운 조선년, 정신을 차리게 해주겠다면서 전기 고문을 했어. 너희들도 잘 보라고 윽박을 질러서, 그냥 서서 볼 수밖에 없었지. 아버지는 사유리 머리채를 낚아채 잡아당기면서, 전기선을 뽑아서 손목하고 발목을 꽁꽁 묶더니, 이 년, 눈 떠! 라고 소리 꽥 지르면서 전압기 회전판을 돌렸어. 아이고 사유리, 눈에서 빛이 번쩍 나더니, 온몸을 푸들푸들 떨었지.”

“정신을 잃은 사유리를 밖으로 내던지고, 찬물을 끼얹었어. 그 추운 겨울에….”

“우리들이 껴안아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죽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라고, 손댔다가는 똑같은 꼴 당할 줄 알라고, 그래서…아무도…아무 것도….”

“아침…얼어 죽었더라고.”

“아버지, 정말 나쁜 자식이야.”

여자들은 묵직하고 뻐근한 엉덩이를 들고 그늘에서 완전히 마른 위생 색을 걷어 대바구니에 담았다. 몇 명은 ‘군인 아저씨, 수고가 많네요. 자, 한 숨 돌리세요’라고 쓰여 있는 담배를 꺼내 입술에 물고 불을 붙여, 빨아들인 연기를 위생 색에 불어넣었다. 연기가 새지 않는 색에 밀가루를 뿌리고 돌돌 말아, 군에서 지급한 ‘돌격 1번’이라 쓰여 있는 조그만 종이봉투에 집어넣는 여자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운 분이 올 때는 알 수 있지요

삼 리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

성가신 분이 올 때는 알 수 있지요

사흘 전부터 지끈거리는 머리

그 노래 소리에 조선의 노랫가락이 섞였다. 입술도 목도 움직이지 않고, 조그맣게, 정말 조그만 소리로, 나미코와 고하나는 어느 여자가 부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찌 잊겠나

몸은 떨어져 있어도

산에 산에 제비꽃 필 동안은

생각이 나나 그 보리밭

너와 내가 만났던 곳*

---------------------------------

*연정가, 김봉현 ‘조선민요사’에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