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재동/누구를 위한 장기이식法인가

  • 입력 2003년 9월 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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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가족이나 친지가 아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신체의 일부를 건네주는 사람들의 헌신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다.

장기기증은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오다 2000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정부 주도로 일원화됐다. 장기기증을 제도화하고 불법적인 장기매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법률은 가족 친지가 아닌 타인간의 장기이식에 대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심의 절차를 만들어 놓았다. 취지는 인간의 장기가 매매되는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 따라서 기증자와 환자의 재산관계 및 친분 등을 엄격하게 따지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엄격한 절차가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자 하는’ 헌신을 헛되게 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점이다. 현 제도로는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신체조건에 맞는 기증자를 구했다 하더라도 기증자가 ‘가난한 사람’일 경우 이식이 성사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장기매매를 의심받기 때문이다. 매매 가능성을 아무리 부인해도 ‘말’로는 입증이 안 된다.

장기기증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기증자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더 이상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일선 병원에서 이식허가 심의를 맡고 있는 한 사회복지사도 “매매를 의심할 만한 어떤 정황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심의를 할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뿐만 아니다. 준비할 서류는 많고 심의도 오래 걸린다. 모두 순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절차가 하루가 아쉬운 말기 환자들과 그 가족에게는 크나큰 고통이다. 더구나 간신히 기증자를 찾고도 허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 그 실망감은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간경화로 투병 중인 유명 서양화가 박수룡(朴洙龍·49)씨가 그런 케이스다.

2000년 장기이식 경로가 일원화되기 직전에는 대기 중인 환자가 2800여명이었으나 올들어 1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실제 이식을 받은 건수는 생체장기의 경우 매년 약 1500건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아예 해외로 ‘원정수술’을 받으러 나가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의 한 관계자는 “민간단체에서 활발히 이식을 주선하던 예전과 달리 정부는 오로지 관리와 규제에만 신경 쓰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유재동 사회1부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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