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얼음판이 아니면 어떠랴”

  • 입력 2003년 5월 19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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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을 먹고 살아요.” 한솥밥을 먹다가 뿔뿔이 흩어졌지만 내일의 희망이 있기에 오늘이 힘들지 않다. 왼쪽부터 김재관 박경운 박진홍 백승훈 이길영 선수. 인천=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우리는 꿈을 먹고 살아요.” 한솥밥을 먹다가 뿔뿔이 흩어졌지만 내일의 희망이 있기에 오늘이 힘들지 않다. 왼쪽부터 김재관 박경운 박진홍 백승훈 이길영 선수. 인천=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내일을 향해 뛴다.

팀은 해체됐지만 희망은 해체되지 않았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결코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다.

17일 인천동막시립롤러경기장.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5명이 오랜만에 손을 맞잡았다. 김재관(24) 박진홍(29) 백승훈(26·이상 로시뇰)과 박경운(34·롤캅). 2003KHL 세미프로 인라인하키리그 로시뇰-롤캅의 경기가 끝난 직후였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이길영(27·BN하키)도 달려와 반가움에 서로 어깨를 두드렸다.

이들은 몇 개월 전만 해도 잘 나가던 아이스하키 선수들이었다. 현대 오일뱅커스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다. 이들에게 ‘모기업 경영난으로 팀을 해체한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은 지난해 12월. 20여명의 선수들은 일시에 실업자가 됐고 결국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스하키만 했으니 막상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백승훈과 박진홍 이길영 등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선수까지 지낸 터. 팀 해체 후 서운함과 허탈함에 운동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구하려 했지만 10년이 훨씬 넘도록 잡았던 스틱을 놓을 수 없었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이들에게 4월 초 인라인하키리그가 출범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근 인라인스케이트의 폭발적인 인기를 업고 로시뇰 롤캅 BN하키 딥스 등 4개팀이 창단된 것. 인라인하키는 스케이팅이 다소 차이가나지만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점이 많다.

“운동은 저희들의 모든 것이었어요.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얼음판 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스틱을 잡을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이지요.”

이들은 현대 오일뱅커스 시절 연봉 3000만∼40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막 출범한 인라인하키에서는 경기수당 5만원이 전부. 1년 연봉이라고 해봤자 100만원이 안 된다. 집안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

그런데도 아내와 세 자녀가 있는 박경운과 신혼인 박진홍이 인라인하키행을 결심했다. 이어 다른 선수들도 동참해 지금까지 모두 7명이 인라인하키에 뛰어 들었다.

“인라인하키는 아이스하키에 비해 장소와 장비의 제한을 덜 받습니다. 그만큼 관심도 크지요. 인라인하키 프로화에 앞장서겠습니다.”

실업데뷔 1년 만에 팀 해체의 아픔을 겪었던 김재관은 올 6월 체코 인라인하키국제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인라인하키 붐 조성의 주춧돌이 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지금 처지를 생각하면 불안하지만 그래도 걱정은 안합니다. 우리에겐 내일의 희망이 있거든요.”

이들은 인라인하키 프로선수의 꿈을 키우며 산다. 그 꿈이 있기에 오늘이 힘들지 않다.

인천〓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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