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주의 자궁 미궁이야기'…미궁, 미로와 다르다

  • 입력 2003년 5월 9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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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 미궁도(부분). 미궁 중앙에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 중간의 입구에서 출발한 빨간 선(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면 중앙에 도착한다.사진제공 뿌리와 이파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 미궁도(부분). 미궁 중앙에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 중간의 입구에서 출발한 빨간 선(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면 중앙에 도착한다.사진제공 뿌리와 이파리
◇우주의 자궁 미궁이야기/이즈미 마사토 지음 오근영 옮김/248쪽 1만5000원 뿌리와 이파리

‘미궁(迷宮·labyrinth·이 책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라비린토스 또는 그와 비슷한 구조를 미궁으로 번역했다)’은 ‘미로(迷路·maze)’와 다르다. 쇠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던 곳, 용사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아리아드네 공주가 건네준 실타래를 들고 들어갔던 곳. ‘천재 장인’ 다이달로스가 만들어낸 신비의 궁전 ‘라비린토스(labyrinthos)’는 흔히 우리가 떠올리듯 의도적으로 길을 찾지 못하게 만든 미로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 아래 설계된 미궁이었다.

미궁에서는 오히려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미궁의 외길은 무조건 중심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라비린토스’가 여러 갈래의 길이 난 미로였다면 그 중심에 살고 있던 미노타우로스는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제물로 바쳐진 선남선녀들이 중심으로 향하는 길을 찾지 못했을 테니까.

이 외에도 미궁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통로가 교차하지 않으며 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통로는 늘 180도로 방향을 바꾸며 내부 공간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지나치도록 설계됐다. 미궁에 들어서 중심에 도달한 사람은 다시 모든 통로를 되짚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굳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들고 미궁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후대인들이 ‘미궁’과 ‘미로’를 혼동해 전달한 데서 기인한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는 “크레타의 미궁에서 처녀총각들이 길을 잃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구절이 나온다. 미궁과 미로의 혼동은 이미 이때부터 존재했다. 미궁 연구자들은 신화에 등장하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원래는 춤을 추기 위해 바닥에 그렸던 춤의 진행도였다든가, 크레타의 특산물이었던 양털실을 표현했다든가 따위의 ‘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미궁의 형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유럽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고찰해갔다. 나아가 미궁 형상의 기원을 추적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미궁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

1420년 베네치아의 의사 조반니 폰타나는 ‘전통적인’ 미궁의 개념을 깨뜨리는 그림을 그렸다. 이전까지 문헌상에서는 ‘길을 잃는다’는 식의 개념상 혼란이 있었을지언정 그림에서는 정확한 ‘미궁도’가 전해 내려왔다. 하지만 폰타나가 여러 갈래 길의 ‘미로도’를 그리고, 그 그림에 ‘미궁(라비린토스)’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미궁과 미로가 같은 것으로 이해됐고, 이를 계기로 점차 ‘미로’가 ‘미궁’을 밀어내 현재에 이르렀다.

유명한 크레타 미궁이 그 시원(始原)을 이루는 것으로 잘못 알기 쉽지만, 미궁은 신석기 시대의 그림에 등장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물론 본격적인 미궁도가 크레타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미궁도는 지중해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영국, 인도, 미국(아메리카 원주민) 등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 미궁은 그림, 건축물, 정원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18세기 들어 바로크 음악의 거장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미궁을 음악으로 표현한 ‘소화성(小和聲) 미궁’이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미궁의 역사와 형태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다. 수많은 문헌과 건축물에 등장하는 미궁이 어떤 경로를 통해 변화해왔는지를 분석해내는 작업은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인정할 만하다.

이 책의 원제가 ‘미궁학입문(迷宮學入門)’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책은 여러 형태의 미궁에 관한 ‘친절한’ 맛보기 설명으로 생소한 미궁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활짝 열어준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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