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개혁, 역차별을 우려한다

  • 입력 2003년 4월 8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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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보고한 향후 정책의 기본방향은 옳다.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던 재벌 시스템을 개혁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해서도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하겠다는 방침은 논란의 소지가 많다. 정부 스스로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흔드는 일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불과 1년 전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이 예외조항을 도입했다. 이제 와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른 기업에 대해 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정책의 일관성을 들어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당연하다.

개혁정책은 시행시기의 경제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한국경제의 가장 큰 고민은 기업의 투자부진이다. 이 때문에 얼마전 노 대통령이 주재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는 기업투자를 유인하는 각종 정책을 내놓았다. 이러한 때 다른 정부 부처가 기업투자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만든다면 정부의 정책 조정능력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급속히 세계경제 속에 통합되었다. 국내법인의 연간 매출이 1조원을 넘는 외국기업만도 6개사에 이른다. 국내외 시장 구분이 없어지는 글로벌시대에 국내기업에 대한 규제는 역차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국기업들은 마음대로 투자할 수 있는데 국내기업은 규제에 걸려 투자를 할 수 없다면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경제단체장들이 성명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정부 정책의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 것도 문제가 있다. 그의 말 속에는 국내기업을 적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깔려 있다. 기업은 비록 대주주들이 있다 하더라도 다수 국민이 주식을 보유한 국가 자산이다. 국내시장에서 외국기업에 비해 차별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정책 담당자들은 먼저 우리 기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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