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1급 공무원의 값'

  • 입력 2003년 3월 23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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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가 많이 몰려 있는 정부과천청사. 장차관에 이은 1급 간부 후속인사와 관련해 뒤숭숭한 분위기다. 최근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이 “1급 공무원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으면 집에서 건강관리를 하거나 배우자와 놀러 다녀야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뒤 더 그렇다.

한 경제부처의 고위간부를 만났다. 그는 “공무원 생활 30년 동안 이렇게 비참해 본 적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또 “내 진로를 ‘로또복권’처럼 운에 맡겨야 할 정도로 헛살아왔고 나라를 위해 정말 한 일이 없는지…”라며 “허탈을 넘어 자책감까지 든다”고 했다.

공무원 1급이면 대체로 50대 초·중반의 나이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펼칠 수 있는 연륜이다.

하지만 요즘 기류로는 경륜을 발휘하기는커녕 과거처럼 ‘옷 벗고’ 산하기관장으로 가기도 쉽지 않다. 다른 경제부처 간부 B씨는 “나이가 많거나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으면 나가라는 식의 논리를 강요하는 것 같다”며 울분을 털어놓았다.

경제관료들은 외부인들로부터 비판받는 일도 적지 않지만 인정해줘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얼마 전 재정경제부 세제실의 한 젊은 사무관은 며칠씩 이어지는 밤샘근무를 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지금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가 쓰러진 다음날에도 상사 및 동료들은 늦게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야근을 했다.

적어도 주요 경제부처의 1급까지 오른 관료라면 지금까지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한국경제가 이만큼 온 데에는 기업과 노동자들의 역할도 컸지만 ‘명예와 이름’을 먹고사는 공직자들의 공적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 보좌관의 말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고위관료에 대한 시각은 걱정스럽다. 백번 양보해 유머 섞인 농담이라고 치자. 하지만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공직자들에게 자식 보기 창피할 정도의 압박을 가하면서까지 내쫓는 정부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

김광현기자 경제부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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