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홍사종/노인을 위한 文化가 없다

  • 입력 2003년 3월 14일 2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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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7년만 더 살아라. 그러면 인체유전자와 동일한 돼지장기의 대량 생산 길이 열릴 것이고 수명이 평균 30년 연장되는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얼마 전 복제송아지로 유명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사석에서 내게 불쑥 던진 말이다. 순간 그동안 생명보험회사의 자문에 응하고 있던 나의 뇌리를 전광석화같이 치고 지나가는 생각은 ‘이제 보험회사 연금보험은 망하겠구나’였다.

‘연금보험’은 사람의 평균수명을 ‘경험생명률표’로 계상해 파는 상품인데 준비 없이 넋 놓고 있다가 다가온 ‘30년의 생명연장’이 미칠 ‘역마진’의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만큼 요즘 세상변화의 패턴은 보통사람의 안목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수직적이고 단절적이다. 그 변화의 물결 위에 오늘의 노인문제가 있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 ▼

이미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인구대비 7.6%대로 진입한 ‘고령화사회’다. 옛날 환갑잔치에 가서 절하며 ‘오래 사셨습니다’ 하고 주고받던 덕담은 이미 악담이 된 지 오래다. 황 교수의 말대로라면 몇 년 후면 노인인구 14%대인 ‘고령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인데 정작 지금 중요한 문제는 노인들이 ‘얼마만큼 더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아닌가 싶다.

그 어떻게 사느냐의 중심 위에 노인문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요즘 60대 이상 세대의 사회적 정치적 상실감은 시대변화의 속도와 무관하지 않다. 생물학적 활동능력과는 관련 없이 전개되는 조기퇴직의 여파와 젊은 세대와의 단절감까지, 노인세대의 소외와 상실감은 심각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풀어버릴 마땅한 위안거리조차 없다. 100원짜리 고스톱으로 상징되는 ‘노인정 문화’가 쇠퇴하고 스포츠 댄스, 서예, 영화감상에 이르기까지 문화 소비 욕구는 점차 늘어나는데 마땅히 즐길 문화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노인세대의 문화적 소외는 TV프로그램이 주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온 대중문화시장의 고객이 10대와 20대, 그리고 30, 40대에 국한되어 있기나 한 듯 노인세대를 철저히 외면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는 상업자본의 영향 아래 있게 마련이고 젊은 세대들은 그런 의미에서 적극적인 문화 소비자인 셈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집중되므로 모든 문화시장은 젊은 고객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도 노인세대가 문화의 외곽지대에 있다고 보는 견해는 잘못됐다. 노인도 문화 소비 욕구를 간직한 당당한 소비자로 크고 있다는 징후가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얼마 전 노년의 사랑과 성을 주제로 다루어 노인 세대의 폭발적 인기를 모은 영화 ‘죽어도 좋아’를 팔순 넘은 나의 노부모님까지 관람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새로운 문화시장 형성의 가능성을 예상하게 해 준다. 이따금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등에서 펼쳐지는 ‘악극’ ‘뮤지컬’ 공연에 물밀듯 몰려드는 노년의 관객들은 갈급한 노인 문화 프로그램 부재의 현실을 대변해준다.

▼세대간 아우를 프로그램 절실 ▼

TV를 봐도, 공연장에 가도 이들 세대의 취향을 이끌어 줄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10대 중심의 대중문화 프로그램이 판을 치고 있고, 세대간을 아우를 수 있는 ‘중간 프로그램’들조차 없다. 젊은층 취향으로 형성된 시장 속에서 노인세대는 문화 생활에서까지 ‘뒷방 노인네’의 설움과 소외를 톡톡히 맛본다. 이제 노인도 ‘사랑하고 싶고’ ‘문화를 즐기고 싶은’ 세상으로의 변화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당면한 과제다.

이를 위해 TV 제작자 및 모든 문화공간 운영자와 예술프로그램 공급자들의 안목과 시장개발 전략을 촉구해 본다. 또한 사회복지정책에서의 노인복지의 개념도 ‘문화복지’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노인도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화프로그램 육성에 문화정책 당국자들의 적극적 관심도 주문해 본다. 세대간의 문화적 소통을 통한 응집력이 곧 건강한 사회의 응집력이기 때문이다.

홍사종 경기문화예술회관장·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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