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민웅/국민접근 차단하는 ‘참여정부’

  • 입력 2003년 3월 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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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벤치마킹하지 않을 것 같던 노무현 정부가 어쩐 일인지 청와대 취재시스템은 미국 백악관 시스템을 그대로 본뜨고 있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과 대변인의 역할을 분리한 것도, 오전과 오후 브리핑 제도를 도입한 것도, 사전 면담 약속 없이 취재기자의 비서관 방 출입을 금한 것도 백악관 제도를 본뜬 것이다.

남의 나라 제도를 도입할 때 조심해야 할 대목은 그 결과물만 들고 올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제도가 정착하게 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해 우리의 풍토에 맞게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본뜨고 있는 백악관의 취재시스템은,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백악관이 생긴 지 150년도 더 지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 겨우 정착된 제도다.

▼"청와대 폐쇄성 되레 강화돼"▼

그런 시스템을 사람과 문화와 풍토가 전혀 다른 한국에 느닷없이 도입해 놓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브리핑은 부실하고 취재는 극도로 제한돼 되레 (청와대의) 폐쇄성이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브리핑 내용에 대한 추가 취재도 대변인실을 통한 사전 면담 약속이 있어야 가능하도록 했는데, 이 경우에도 기자들이 비서관 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서관이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으로 와서 취재에 응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원과 기자가 마치 감시를 받고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취재고 뭐고 아무 것도 안 된다. 이런 방침은 “청와대의 판단에 따라 취재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고, “대변인 브리핑이나 보도자료를 참조해 주문 기사만 작성하라는 ‘보도지침’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험악한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의 이런 취재시스템이 다른 정부 부처에도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 정부는 스스로 ‘참여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아마도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참모들의 뇌리에는 분명 참여민주주의 또는 숙의(熟議)민주주의의 개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어떤 문제에 관한 토론에 참여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두말할 것도 없이 정보다. 뭘 알아야지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시민의 참여와 토론을 장려하는 숙의민주주의는 인간의 오류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다. 몇 사람이 밀실에 앉아서 의사를 결정하거나, 토론의 과정없이 여론조사 또는 표결의 집계만으로 국민의 선호를 반영하는 것보다는, 정확하고 종합적인 정보를 토대로 공개적이고 이성적인 자유토론을 거쳐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더 정당할 뿐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효율적이고 조직화된 탐사시스템과 정보, 지식, 견해가 공개 공유되고 그래서 시민이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는 그런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언론이 그런 시스템 역할을 한다. 고로 언론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이다.

▼정보공개가 熟議민주주의 열쇠▼

뉴욕타임스의 기자로서 여러 대에 걸쳐 백악관을 취재했고 나중에 주필을 역임한 제임스 레스턴은 대통령이 언론을 다루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선의 방법은 언론에 모든 걸 털어놓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언론을 바쁘게 만들고 마침내 그들을 지치게 해 진력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언론의 후각을 자극해 미궁을 헤매게 하는 흥분이나마 맛보게 하는 것이다. 최악의 방법은 리처드 닉슨과 린든 존슨처럼 언론을 조작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사적인 대화에서는 솔직한 척 가장하고, 한편으로는 온갖 술수를 다해 언론으로 하여금 정부가 조작한 잡동사니로 1면의 제목과 기사를 메우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 방식은 어떤 방법에 더 가까울까.

‘참여 정부’, 얼마나 좋은 말인가. 문제는 실천이다. 국민의 접근을 차단하는 청와대 취재 시스템을 시급히 수정 보완해 참여정부 실천에 솔선하기 바란다.

이민웅 한양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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