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프랑스와 독일 지도자를 치켜세우는 것은 조만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벌어질 표 대결 때문이다. 안보리 15개 이사국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사실상 승인해 달라’는 결의안 채택 여부를 표결로 결정해야 한다.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중 거부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없어야 하는데 현재 판세는 미국도 이라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거기다가 여러 이사국들의 표심이 오락가락하고 있어 미국과 이라크의 속을 태우고 있다. ‘표’를 잡기 위해 걸프전 때 미국 편에 섰던 프랑스와 독일을 향해 ‘웃음’을 보이고 있는 이라크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유엔 안보리의 권한은 특정국을 겨냥한 전쟁을 승인할 정도로 막강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6·25전쟁 때 유엔군 파견이 안보리 표결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권한을 가늠하기 쉽다. 정부가 단 한 차례(96∼97년)에 불과한 안보리 이사국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세계 정세를 좌우하는 안보리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총력외교를 벌여 스리랑카를 사퇴시킨 뒤 아시아 지역에 배당된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스리랑카에 섭섭지 않은 외교적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우리가 이번 안보리 표결을 구경거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안보리로 넘어간 북한 핵문제 때문이다. 안보리가 결의안 채택을 시도하면 우리는 이사국을 상대로 북한과 치열한 ‘득표 전쟁’을 해야 한다. 게다가 북핵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현안이다. 안보리 이사국의 찬반 의견이 닮은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측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면 안보리의 동향을 파악해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 외교팀의 분발을 바란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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