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유엔안보리 환심사기

  • 입력 2003년 2월 28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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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언론은 요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알-무나딜 알-아크바르(위대한 투사)’라고 부른다. 이라크 공격을 준비 중인 미국에 맞서 “지금은 무력을 사용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반전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시라크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라크인들에게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역시 ‘용감한 투사’다. 이 칭호 또한 반전그룹의 선봉에 선 독일 총리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반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치광이’, 미국 편을 들고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스페인 총리는 ‘악한’이라고 부른다.

▷이라크가 프랑스와 독일 지도자를 치켜세우는 것은 조만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벌어질 표 대결 때문이다. 안보리 15개 이사국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사실상 승인해 달라’는 결의안 채택 여부를 표결로 결정해야 한다.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중 거부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없어야 하는데 현재 판세는 미국도 이라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거기다가 여러 이사국들의 표심이 오락가락하고 있어 미국과 이라크의 속을 태우고 있다. ‘표’를 잡기 위해 걸프전 때 미국 편에 섰던 프랑스와 독일을 향해 ‘웃음’을 보이고 있는 이라크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유엔 안보리의 권한은 특정국을 겨냥한 전쟁을 승인할 정도로 막강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6·25전쟁 때 유엔군 파견이 안보리 표결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권한을 가늠하기 쉽다. 정부가 단 한 차례(96∼97년)에 불과한 안보리 이사국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세계 정세를 좌우하는 안보리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총력외교를 벌여 스리랑카를 사퇴시킨 뒤 아시아 지역에 배당된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스리랑카에 섭섭지 않은 외교적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우리가 이번 안보리 표결을 구경거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안보리로 넘어간 북한 핵문제 때문이다. 안보리가 결의안 채택을 시도하면 우리는 이사국을 상대로 북한과 치열한 ‘득표 전쟁’을 해야 한다. 게다가 북핵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현안이다. 안보리 이사국의 찬반 의견이 닮은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측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면 안보리의 동향을 파악해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 외교팀의 분발을 바란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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