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亞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25·끝>안보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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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과 그 결과는 어떠한 형태든 한국안보에 구조적 변화를 초래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핵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면 남북한 신뢰구축과 군비통제가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갈등과 긴장의 긴 질곡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전쟁 억지가 주목표인 한국안보의 전형적 모습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얼마 전 주한미군의 전력구조의 변화를 시사했지만, 앞으로 주한미군의 역할과 구조의 변화는 바뀐다고 봐야 한다. 주한미군의 후방 배치는 유사시 ‘인계철선’으로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구조의 변화는 한반도 유사시 대응전략인 이른바 ‘작전계획 5027’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한미 안보관계의 전반적 재조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미국에 대해 보다 자주적이고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도 주한미군의 역할과 구조의 조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가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의 부재 속에서 거론되고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반 현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총체적으로 지향해야 할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채 그때그때 개별적으로 접근할 경우 사안들 사이에 충돌과 모순이 생겨날 수밖에 없고 한국안보는 상대적으로 취약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대전략을 세워야 한다. 낡은 집을 새로 단장하듯 안보도 리모델링해야 한다. 그것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 주한미군의 구조 변화 등 달라지는 주변 환경을 포괄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새로운 전략개념을 시급하게 수립해야 한다. 그 속에서 한미관계의 미래를 설계하고 북한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안보의 새 틀은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에도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앞으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나 각 지역질서는 조금씩 다른 양태를 띠고 전개되고 있다. 동북아 질서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19세기 유럽의 세력 균형질서에 가까운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국들이 세력경쟁을 벌이는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이 세력균형의 한 축을 이루는 국가로 살아 남느냐의 문제가 한국안보가 당면한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이들 국가는 이미 군사혁신에 박차를 가해 왔고 상당부분 성과를 보고 있다. 한국도 군사혁신을 통해 국방의 첨단화를 이룩해 나가지 않으면 미래의 전장에서는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제대로 역할을 해내기 어렵다.

셋째, 민주주의에 걸맞은 안보의 리모델링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도 개혁을 통해서 효율화가 이루어지고 정책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실질적인 고위 안보 정책 결정 기구가 되도록 개편되어야 한다. 또한 국방부 내에서도 정책수립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무기 구매의 투명성도 구축돼야 한다. 무기 구매는 제도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설령 내부적으로는 투명성을 확보하는 절차를 거쳤다 하더라도 F-15전투기 구매의 경우에서 보듯, 반미감정 등 의외의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무기 구매와 관련해 학계 및 민간 전문가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일종의 평가위원회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넷째, ‘안보도 복지’라는 개념이 정착되어야 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걸맞은 군대로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신세대는 군대를 점점 기피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병영의 현대화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직업군인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들의 주거환경, 자녀 교육, 봉급, 연금 등이 안보복지의 차원에서 새롭게 다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방비를 현실화하는 것이 당면과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7% 정도인 국방비를 즉각적으로 3%까지 늘려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안보 위협이 적은 나라도 GDP의 3∼3.5% 정도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과거 우리는 GDP의 5% 이상의 국방비를 쓰면서도 고도성장을 이뤘던 경험에 비춰볼 때 3% 정도의 국방비는 경제에 큰 부담이 안 된다. 안보 복지와 군사혁신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적정 국방비의 확보가 시급하다.

다섯째, 새로운 안보 위협에 적절히 대응하는 리모델링이 이뤄져야 한다. 신종 안보 위협으로 등장한 테러에 대한 안보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사이버테러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가 인터넷으로 통하는 사회다. 더욱이 우리처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터넷 사회로 성장하는 나라에서는 사이버테러가 곧 국가안보의 위협요인으로 등장할 것이다. 사이버테러 전담 부서를 시급히 창설해야 할 것이다.

안보는 결국 국가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끊임없이 리모델링하는 노력 없이는 3등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서도 강한 국가만이 살아남는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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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외정보 기능 강화를▼

대통령의 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가안보다.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현재의 북한 핵 위기는 국방은 물론 수출과 국내 투자, 주요 우방 및 주변국들과의 관계 정립 등 전방위적 차원에서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안보 정책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좌우된다는 생각으로 주요 외교 군사 안보 현안에 대한 정책 대안, 그리고 새로운 국민적 안보 합의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

새 정부는 그 성격상 다양한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가안보만큼은 매우 신중한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부분적인 성과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 5년 동안 국가안보, 특히 대북 정책에 대한 투명성이 부족했고 국민적 합의 도출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정부는 새로운 국가안보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기에 앞서 햇볕정책에 대한 제도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 주요 국방 현안, 한미관계 재정립, 그리고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대북 정책 등은 현재의 국가안보정책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한 이후에 차분한 자세로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 정부는 다음의 2개 과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했으면 한다.

첫째, 국가의 정보 능력을 제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 나라의 정보 능력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 대부분의 위기와 분쟁은 사실 정보 실패에 기초하고 있다.

50년의 6·25전쟁, 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82년의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 그리고 9·11테러 등은 정보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따라서 새 정부는 국가정보원의 대외정보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대북 정보 획득과 분석,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여야 합의 하에 국정원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국정원장의 임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면 한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다양한 정보 소스에 대한 검증 장치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미국처럼 ‘대통령 대외정보 자문위원회’를 새로 발족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이 자문위원회는 초당적으로 운영해야 하며 주요 국가정보 현안을 보다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전직 고위 관리, 정보전문가, 학자 등 각계 인사가 고루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국가안보회의의 기능을 개편해 관련 부처들의 고유 영역을 최대한으로 살리고 활용할 수 있는 열린 정책 조율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노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가 국가안보 보좌관직을 신설하고 외교·국방 보좌역을 각각 임명키로 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이런 제도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종전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의와 사무처를 통합해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와 유사한 형태의 조직정비를 해야 한다. 국가안보회의는 다양한 현안을 둘러싼 부처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한편 최소한 2∼3개월 동안은 국가안보정책 점검 절차를 밟는 것이 좋다.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책임질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 등에게 실질적인 힘을 실어줘야 한다.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들 부처를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노 당선자는 내각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발표했으나, 청와대 비서실 개편 방향으로 볼 때는 그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NSC가 성공적으로 출발하기 위해서는 각 부처의 목소리를 최대한 경청하고 냉정하게 조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외교 안보 관련 장관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대외교섭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임기를 최소한 2∼3년은 보장해야 안보정책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이정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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