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준용/재난방지 기능 통합운영을

  • 입력 2003년 2월 20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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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지 않은 참사가 또 한번 일어났다. 무고한 사망자가 120명이 넘는 대형 참사로 인해 국민은 큰 슬픔에 잠겼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안전 불량 국가로 또 다시 전 세계에 각인되었다.

이번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인한 엄청난 희생은 한마디로 총체적 안전불감증의 결과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차량 구조, 지하철 역사 시설, 지하철공사의 위기대처능력, 시민 안전교육, 긴급구호체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희생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형식적 점검 안전불감증 키워▼

특히 화재 때마다 드러나는 고질적 문제인 가연성 내장재 사용으로 인한 유독가스 배출이 인명 살상의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배연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비상조명도 불충분했다. 자동 화재진압 시설과 응급구호 장비가 불충분하거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민들의 경우 숱한 대형사고에도 불구하고 비상시 초보적인 행동요령조차 숙지하지 않아 비치된 소화기를 사용하지 못해 더욱 희생을 키웠다. 30년 동안 되풀이한 민방위훈련이 형식적인 것이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응급구호 체계도 대형 사고에 대처하기에는 양적, 질적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안전수칙을 무시한 지하철 관리 당국자들의 안이한 사고 대응이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방독면 등 안전장구도 불충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관리 인력 앞에서는 어떤 훌륭한 시설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고뿐 아니라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지하철 가스 폭발, 인천 호프집 화재 등 대형 사고가 줄을 잇는 것은 나라 전체의 만성적 안전불감증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하겠다. 정부의 형식적인 안전점검이 결국은 전 국민의 안전불감증을 줄이기는커녕 사실상 부추겨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정부는 즉시 모든 지하철의 안전시스템을 긴급 점검하고 보강해야 한다.

특히 구태의연한 주먹구구식 안전관리 방식을 선진국형으로 전환시켜야 할 때다. 제대로 된 재난방지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비상시에 실제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가 이뤄져야 한다.

첫째, 재난방지시스템은 ‘실제 상황에서 발휘되는 성능 기준 설계’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번 사고에서 드러났듯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안전기준은 효과가 없다. 희생자들에게는 위급한 초기 상황에서 단 몇 분의 배연능력이 절실했던 것이지 한 시간 평균 배연능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제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안전관련 설계를 실제 상황에서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준으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은 주먹구구식으로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과학적인 ‘시나리오에 입각한 시뮬레이션’ 방법으로 해야 한다. 유독가스의 발생 총량, 발생 속도와 농도, 화염 전파 속도 등을 고려해 배연 설비 용량, 소방 진입, 대피와 대응 방법을 사전 결정하고 이들 시나리오에 따라 실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재 조직과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이번 기회에 정부는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재난 방지 관련 기능을 통합 운영하고, 국가적으로 ‘통합 위기 대응 관리 시스템(IRMS)’을 확대 보급해야 한다. 특히 국가, 지방자치단체, 대기업 등이 가진 소방자원을 신속히 동원해 재난 예방에 효과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지자체-기업 공조체제를▼

노무현 정부는 이번 재난을 거울삼아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 국정과제의 하나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런 참사를 겪고서도 앞으로 5년 동안 선진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작동시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나라라고 볼 수 없다. 조금만 더 제대로 대비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던 이 처참한 국가적 비극을 안전의식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성준용 LG환경·안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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