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朴智元실장의 ‘입’ 때문에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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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재정경제부는 발칵 뒤집혔다. 미국의 유력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낮추겠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는 국내 통신사의 긴급기사가 타전됐기 때문이었다. 이 뉴스는 바로 뉴욕 런던 홍콩의 금융시장에도 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 핵문제, 의혹투성이인 대북 비밀송금, 차기 정부의 정책 혼선 등으로 ‘자라 가슴’인 외국인투자자들은 ‘앗! 뜨거워라’ 싶어 해외시장에서 한국 관련 채권을 내던졌다. 재경부에는 국내외 외국인투자자와 언론사의 문의가 쏟아졌다.

이날 ‘혼란’의 진원지는 청와대였다.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은 기자들에게 현 정권의 ‘치적’을 자랑하면서 “얼마 전 무디스가 사실상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 등급 내리겠다고 통보했으나 재경부와 대통령직인수위가 열심히 뛰어 그냥 유지키로 했다”고 말했다. ‘소통령’으로까지 불리는 그의 정치적 비중까지 겹치면서 발언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취재 결과 무디스 관계자가 1월 초 재경부에 “북한 핵문제와 반미(反美) 성향의 촛불시위로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을 이미 하향조정했다는 통보는 아니었다. ‘과거완료형’이었지만 일단은 ‘현재진행형’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국내외를 뒤흔든 박 실장의 신용등급 관련 발언은 누가 봐도 경솔하고 오해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현 정부 및 차기 정부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언(失言)’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민감하고 폭발력이 큰 사안이었다. 마치 ‘무디스에 대한 로비’로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오해를 준 것도 개운치 않았다. 재경부의 태도도 그렇다. 재경부는 지난달 초 무디스가 북한 핵문제와 촛불시위 등을 우려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신용등급 하향조정 검토’는 공개하지 않았다가 문제가 커지자 뒤늦게 시인하면서 파문 축소에 부심했다.

책임 있는 고위인사라면 말의 ‘무게’와 파장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경제 관련 현안에서 ‘아마추어적 한건주의’가 얼마나 큰 파장을 초래하는지를 ‘박지원 발언 파문’은 잘 보여주고 있다.

김광현기자 경제부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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