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85)과 닮은꼴이다. 똑같이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에 청춘을 바쳤고 학대받던 반체제지도자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우뚝 선 인생의 궤적도 닮았다. 그래서 하벨은 ‘동유럽의 만델라’로 불린다. 두 사람이 비록 피부색깔은 다르지만 인류가 존경해야 할 같은 높이의 지도자라는 공감대가 이심전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의 자리를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도 닮았다.
▷만델라도 국민의 아쉬움속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인정부의 흑백인종차별정책에 대항해 싸우다 무려 27년을 감옥에서 보낸 만델라는 ‘불과’ 5년간 권력을 누린 뒤 훌쩍 권좌에서 떠났다. ‘금세기 최고의 정치지도자’ ‘용서와 화해로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선 영웅’ 등의 칭호가 말해주듯 얼마든지 재집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멀고 험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며 정치후배인 타보 음베키에게 길을 터주고 물러난 만델라. 퇴임 후 국제분쟁 해결, 에이즈 퇴치 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 그를 세계인은 ‘퇴임 후가 더 아름다운 지도자’라고 부르며 잊지 않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흔히 만델라에 비견된다. 노벨평화상 수상 경력까지 따진다면 그런 타이틀이 없는 하벨보다 훨씬 더 만델라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김 대통령 스스로 2년 전 만델라를 초청해 ‘20세기의 위대한 양심’이라고 칭송하며 동지적 유대감을 갖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의 퇴임 모습은 ‘만델라급’이 될 것인가. 한국민도 남아공이나 체코 국민처럼 아쉬움 속에 퇴임 대통령을 보낼 것인가. 현재로서는 아름다운 퇴장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김 대통령을 ‘아시아의 만델라’라고 한 것은 지나친 평가였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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