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승호/‘쉬쉬’ 급급한 폰뱅킹 수사

  • 입력 2003년 1월 29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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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농협 현금카드 위변조 사건에 이어 터진 폰뱅킹(전화 이용 금융거래)을 통한 억대 불법 인출사건은 금융계의 허술한 보안시스템 문제와 함께 경찰 수사의 허점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폰뱅킹 불법 인출사건의 피해자 진모씨(57)로부터 이달 6일에 신고를 받았으나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비공개 수사를 하다가 27일에야 경찰청에 보고했다. 사건 내용이 언론사에 제보돼 보도가 예상되자 그때서야 보고한 것. 보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범인을 잡는 것이 우선이지 보고를 먼저 할 필요가 있느냐”며 “범인을 검거하면 사건 전모를 공개하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진씨가 피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려 하자 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져 정작 사건 해결보다는 사건을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초동수사도 문제투성이였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되는데도 범인 몽타주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범인이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에 나타나 환전상과 구두 노점상 등 3명을 만나 1억2800여만원을 이체해 주고 달러와 백화점 상품권을 바꿔 갔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범인의 모습을 파악해 몽타주를 작성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에 속한다. 경찰은 범인이 지난해 12월 31일 피해자 진씨를 사칭해 계좌이체 한도액 등을 확인하기 위해 국민은행 상담원과 통화했던 녹음기록도 확보하고 있었으나 이 역시 28일에야 공개했다. 경찰은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공개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그동안 비공개 수사를 통해 얻은 성과는 거의 없는 셈이다.

유괴범 수사처럼 사건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수사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폰뱅킹 이용자가 2300만명을 넘어섰고 제2, 제3의 유사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찰의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태도는 결코 적절치 못했다.

이번 사건과 같은 신종 범죄에 대한 경찰의 수사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없는지 검증돼야 한다.

정승호 사회1부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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