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산 없이 공약 지킬 수 있나

  • 입력 2003년 1월 29일 18시 40분


코멘트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선거공약을 토대로 추진키로 한 정책 내용들을 보면 기대되는 바가 없지 않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대선 때 약속한 사항을 어김없이 시행하려는 뜻은 이해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도 경제가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 과거 예산이나 현실적 여건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다가 공약은 실천하지 못한 채 경제만 그르친 경우를 우리는 여러 정권에서 경험했다.

대통령후보로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책은 가급적 시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예산타령만 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보라”고 관료들을 질책한 것은 기본적으로 맞는 일이다. 복지부동하는 관료주의를 깨뜨리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관료들이 더 분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질책 이후 정부 내에서 나타난 현상들은 납득할 수 없다. 일부 부처에서 정책의 부작용이나 예산의 뒷받침을 검토하지도 않고 공약을 그대로 베끼는 식으로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들 부처에서 제시한 ‘장밋빛 정책’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그야말로 복지선진국이 되겠지만 예산도 없이 정책이 시행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나온 정책들을 모두 시행하려면 그야말로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분야의 정책만을 실천하려 해도 이 분야 예산이 올해 8조7000억원에서 5년 뒤에는 26조원으로 늘어나야 한다니 재정위기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공약과 실천되어야 할 정책은 다르다. 나라 재정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책은 실현 가능한 것부터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한다. 이미 외환위기를 극복하느라 나랏빚이 엄청나게 늘지 않았는가. 복지공약도 좋지만 재정위기가 깊어져 경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예산대책도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빚을 져가면서 살림을 늘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편히 살기 위해 다음 세대에 빚을 지워서야 되겠는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