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곤/再修로 내모는 교육

  • 입력 2003년 1월 21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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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카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아주 잘했다. 선생님과 부모들 모두가 그가 일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두고 너무 긴장해 잠을 설치고 독감까지 걸리게 되었다. 수능 날은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해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평소 그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는 시험을 잘 보아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재수를 하는 것이 안타까워 어느 대학이든 일단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달래 보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틀 동안이나 영하의 날씨에 떨면서 밤샘 노숙을 한 끝에 가까스로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획일화된 고교-大入제도▼

올 들어 유독 재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직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준비해 왔는데 1년에 단 한 번 치르는 수능시험을 감기, 교통사고, 지각이나 실수로 망치게 되면 12년 동안의 공부가 하루아침에 허사가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재수를 하면 점수가 올라간다는 확신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3년 동안 재수생들의 점수는 재학생들에 비해 급격히 상승했다.

원래 수능은 미국의 대학수학적성시험(SAT)처럼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가름하기 위한 적성시험이었다. 1998년 수능제도를 도입할 때도 수능은 대학 입학의 최소한의 기준으로만 사용하고 학생부, 내신성적, 추천서 등 다양한 전형자료를 활용해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능은 이러한 원래의 목적과 취지에서 벗어나 대학 입학을 결정짓는, 거의 절대적 평가 기준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가장 근본적 원인은 획일화된 현행 고교의 교육체제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다양한 전형 자료를 활용해 학생들을 뽑고 싶어도 고교 평준화로 인해 모든 고교의 교육 내용과 교육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결국 수능 성적에 의존해 학생을 선발하게 된다. 따라서 현행 수능 점수 위주의 입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중고교 자체를 다양화해 여러 형태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후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완전히 일임해 대학이 여러 형태의 고교들을 면밀히 살펴서 자신들이 원하는 학교의 학생들을 다양한 전형자료를 통해 선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입시제도를 개혁해 학생들로 하여금 중고교에 다니는 동안 점수 따기 경쟁에서 벗어나 평소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 운동도 잘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줄 알며 지도력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대학의 서열화 구조를 타파해 지금과 같이 서울대가 최고이고 그 다음은 어느 대학이고 하는 데에서 벗어나 전공 분야에 따라 대학이 다양화되고 특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류대학이냐 아니냐보다는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대학이 과연 어떤 곳이냐 하는 것이 대학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방향으로 교육체제를 구축해 미래사회의 주역들을 길러내고 있다. 우리만이 미래의 주역들을 소수점 이하의 점수 따기 경쟁에만 매달리게 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치열한 국제경쟁 무대에서 국가적 경쟁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소수점에 목맨 평가정책▼

재수 열풍은 우리 교육의 서글픈 하나의 단면이며 여기에는 우리 교육의 많은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헝클어져 있다. 새 정부는 교육개혁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 치밀하고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교육문제를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새 정부는 재수 열풍을 잠재우고 우리의 아이들을 점수 따기 경쟁에서 해방시켜 보다 건강하고 지혜로우며 훌륭한 성품을 갖춘 미래사회의 주역으로 자라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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