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규한/박쥐와 철새

  • 입력 2003년 1월 19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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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햇볕이 쏟아지던 어느 날 한가롭게 시골 경치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펑, 펑’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6·25전쟁의 포성을 기억하는 한 분이 깜짝 놀라며 사방을 둘러보자, 그 동네 사는 분이 과수원에서 까치를 향해 쏘는 공포탄이라고 했다. 까치가 농작물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 마을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까치는 반가운 손님을 알리는 길조이며 은혜를 갚는 영물이라고 했다. 또한 사철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검정 바탕에 흰 선이 아름답다 하여 ‘국조(國鳥)’로 정하더니 어느 사이에 이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었는가.

▷우리는 동물에 관한 그릇된 고정관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예컨대 흔히들 곰이 우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후각이 예민하며 움직임도 지혜롭다고 한다. 여우의 경우 왜곡은 더욱 심하다. 여우의 울음은 죽음을 뜻하며, 여우는 무덤을 파서 송장을 먹는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수많은 설화에서 술수와 조화를 부려 인간을 속이는 사악한 동물로 등장한다. 모두가 사실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을 ‘곰 같다’고 하고 간사한 사람을 ‘여우 같다’고 하니 곰과 여우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박쥐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박쥐가 날 수 있는 것은 앞다리가 날개로 진화했기 때문인데 날개에 손가락뼈 다섯 개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데 성공한 후부터 진화가 중단된 것 같다. 그러나 박쥐는 박쥐일 뿐 자기 편의대로 새인 척 하거나 짐승인 척 하지는 않는다. ‘박쥐 같은 인간’이란 표현은 박쥐를 모욕하는 말이다. 한국에는 강과 바다, 산과 들이 아름다워 온갖 새들이 서식한다. 사계절을 함께 하는 텃새도 많지만 철 따라 찾아오는 겨울새, 여름새, 나그네새도 많다. 철새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무리를 지어 그 먼 길을 질서정연하게 날아간다. ‘지조 없는 정치인’을 철새에 비유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

▷아름다운 자연과 공중을 나는 새, 숲 속 먹이사슬의 신비를 보다가 인간 세상의 거짓과 탐욕에 눈을 돌리면 과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지 회의가 든다. 곰, 여우, 박쥐, 철새는 각각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방식대로 살아간다. 인간의 사악한 모습을 아름다운 동물에 비유하는 것은 인간의 만행일 뿐이다. 더 이상 정치인들이 온갖 현란한 말과 자기 합리화로 애꿎은 박쥐와 철새를 욕되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배규한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khba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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