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正義 독점´ 안된다

  • 입력 2002년 12월 29일 17시 58분


1980년대 초 전두환 정부는 ‘정의사회 구현’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행정기관이든 경찰서든 어디를 가더라도 이 구호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절차적 정통성조차 약한 독재정권이 들먹이는 ‘정의’가 먹혀들 리 없었다. 오히려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약 20년이 흘렀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개혁’이란 말이 유행했다. DJ정권은 이런저런 개혁을 표방하면서 동의와 박수를 요구했다. 고개를 들고 “아니오!”라고 말하면 교묘한 흠집내기를 통해 수구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어떤가. 현 정권은 권력형 부패와 편중인사, 정책실패와 ‘도청 공화국’의 어두운 이미지를 남긴 채 무대에서 내려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인 개혁은 정의와 마찬가지로 유린당했다. 외환위기의 찬바람이 몰아치던 시절 새로 찬 ‘완장’의 단맛에 취해 신흥 권력자들이 ‘당신들만의 천국’을 누릴 때 이미 오늘은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우여곡절 끝에 승리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심상찮은 안보 및 경제상황은 승자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경제분야를 보자.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국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주가는 연일 급락세다. 소비심리는 싸늘하게 얼어붙었고 국제유가는 치솟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 및 재정악화는 ‘내채(內債) 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한다.

부(富)와 고용창출의 핵심주체인 경제계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기업 임원 연봉 공개 의무화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사법경찰권을 준다는 방침 등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노 당선자가 “충격적 구조조정 조치는 없다”고 불끄기에 나선 것도 이런 기류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업을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없다. 계열사간 내부거래나 지분구조의 불투명성 등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큰 것은 악(惡)’이라는 식의 단순논리로 경영의욕을 움츠러들게 할 때 어떤 결과가 올까.

경제분야에서 평등논리가 득세하면 세계적 무한경쟁과 기업합병의 격류 속에서 우리 대기업과 경쟁하는 해외기업이 가장 기뻐할지 모른다. ‘노동의 종말’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지금 국내 산업 공동화(空洞化)와 청년실업 가속화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

개혁의 우선순위도 그렇다. 민간기업보다 먼저 메스를 대야 할 곳은 공공부문이다. 권력기관의 중립성 확보와 도청 공포의 불식, 현 정권의 비리와 실정(失政) 규명도 서둘러야 할 과제다.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가 경제개혁의 축이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한국사회의 핵심가치다. 외연(外延)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은 있지만 어떤 정책도 이를 현저히 훼손하면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영국 미래학자인 이언 엥겔은 ‘지식노동자 선언’에서 “지나친 감상주의는 반드시 역효과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된다’는 경구(警句)도 기억하자. ‘모두가 잘사는 경제’는 좋지만 나눠먹을 밥통 자체를 깨뜨릴 위험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는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관치(官治)에 의존하려는 유혹을 경계하길 바란다. 시장이 만능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의 실패’보다는 ‘정부의 실패’가 더 큰 폐해를 낳은 것이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다. 빅딜정책의 현주소는 대표적 사례다.

경제는 유리와 같다. 손을 한번 잘못 대면 순식간에 깨진다. 특히 반(反)시장적 도그마와 ‘정의와 선(善)의 독점 의식’은 치명적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 각 분야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노력이 필요하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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