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최막중/´행정수도 이전´ 신중한 접근을

  • 입력 2002년 12월 12일 18시 45분


며칠 전 대선 후보간 TV 토론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열띤 공방이 벌어진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알 수 있다. 그 만큼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충격요법으로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수도 이전은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통일되면 재이전 가능성도▼

행정수도 이전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물리적으로 신도시를 개발하고 행정관청을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은 초기 투자비용일 뿐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정수도 이전은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연쇄적으로 공간적 거래질서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며, 이에 따라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새로운 공간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거래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행정부서가 이전하면 당장 관련 기업은 업무 협의를 위해 그 전에는 지불하지 않았던 장거리 교통비용과 시간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비용부담 때문에 따라서 기업은 기존에 형성해 놓았던 거래공간을 포기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한 기업이 이사를 하게 되면, 거래관계에 있는 다른 기업들도 연쇄적으로 장거리 교통과 시간비용을 감수하거나 또는 기업 이전에 따른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이같이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면, 차라리 더욱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통일시대를 대비해 동일한 비용으로 행정수도를 서울과 평양의 중간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도 첨예하지만, 통일 이후 남북간 지역 격차에 따른 갈등은 훨씬 더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똑같은 논리에 기초해 장래에도 남북간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행정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면, 행정수도를 두 번이나 이전해야 하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다.

반면 행정수도가 이전된다고 해서 서울의 공동화(空洞化)를 우려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다. 중앙정부의 행정서비스 기능은 분명 기업의 입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려 요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밖에도 기업의 입지는 교통 물류 등의 기반시설, 노동력과 각종 금융 경영서비스의 질, 생활문화환경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이전한다고 해서 이를 쫓아 모든 기업과 경제 기능이 이전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워싱턴, 호주의 캔버라,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터키의 앙카라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별도의 행정수도를 건설했지만, 이로 인해 뉴욕 시드니 상파울루 이스탄불의 경제가 황폐화되지는 않았다.

기존 수도권의 기능을 떼어내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것은 국가 전체로 보아서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비용으로 비수도권에 대한 새로운 시설투자와 지원에 주력해 내생적(內生的)인 지역 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역특성화 통한 발전 바람직▼

따지고 보면 결국 지역 발전의 궁극적 목표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마다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수도권은 결코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이 획일적으로 지향해야 할 ‘정답’이 될 수가 없다. 지역간 균형은 획일화 동질화의 논리가 아닌 특성화의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비수도권의 고유한 자원과 특성에 기초한 다양한 지역발전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이와 같이 지역간 특성화 발전이 이루어질 때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상생(相生)의 윈-윈(win-win) 전략을 추구할 수 있으며, 이는 국가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플러스섬 게임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최막중 한양대 교수·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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