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모두가 의사를 지망한다면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8시 06분


수능시험 결과가 다음주 발표된다. 또 한 번의 입시경쟁이 겨울을 뜨겁게 달굴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대학입시에서 두드러진 경향은 의대 선호 현상이다. 자연계 수능시험의 최상위권 학생들은 거의 예외없이 의대를 지원한다고 한다. 법대 상대 쪽으로도 우수 학생들이 몰리지만 의대처럼 편중되어 있지는 않다.

수능시험이 머리 좋은 학생을 제대로 골라내고 있느냐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하지만 일단 전국 고교에서 성적 좋다는 학생들을 의과대학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점은 틀림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의대와 법대에 전국의 최상위권 학생들이 집중되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현상은 있었으나 요즘과 같이 심하지는 않았다.

▼훨씬 무서운 전공서열화▼

흔히 서울대를 정점으로 순위를 매기는 대학서열화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의대와 같은 특정 전공에 학생들이 몰리는 전공서열화라는 생각이다. 대학서열화는 대학끼리의 문제이지만 전공서열화는 인재의 효율적 개발과 활용이라는 국가 차원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가장 인기 있는 전공에 가장 우수한 학생이 몰리고 그 다음 인기전공에 다음으로 우수한 학생이 몰리고…. 이런 식으로 전국의 대학과 학과가 차곡차곡 채워진다면 장차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한마디로 분야간 극심한 불균형 발전이 초래될 것이다. 국가전략 분야로 선진국들이 최고의 인재를 투입하려고 애쓰는 분야로는 정보통신 생명공학 문화콘텐츠 환경공학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 속에 의학과 법학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각 전공 분야에 우수한 인재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것도 의대면 의대, 법대면 법대에 가장 적성이 뛰어난 사람들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직업에 따른 소득격차와 안정성, 사회적 지위 등 여러 변수와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의대 선호 현상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확산되면서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으며 정보화 사회를 맞아 유망 직업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아노미 현상이 청소년들 앞에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과도기일수록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려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의대 선호 현상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과 문제점들이 함께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직업관의 부재(不在)다. 직업이 개인의 이익 추구 수단으로만 정착되어 있지, 자아실현이나 국가에 대한 기여 등 직업의 사회적 공익적 성격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돈 되는 학문’에 대한 지나친 숭배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돈 이외에 도전정신이라든지 봉사라든지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되며 그만큼 어느 국가보다도 앞으로 삭막한 사회가 될 개연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더 책임이 큰 것은 정부다.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 인적 자원에 대한 국가적인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놓지 못했다. 교육 문제 하면 으레 사교육비 감소나 입시문제만 생각하고 여기에만 죽어라 매달렸지 정작 ‘큰 그림’은 그리지 못했다. 국가전략 분야에 대해서는 선진국처럼 과감한 육성정책에 나서 인재들이 장래에 대한 전망을 갖고 모여들도록 해야 하는데도 최근 이공계 위기에서 나타나듯이 ‘행차 뒤에 나팔불기’ 식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언젠가 치를 혹독한 대가▼

컴퓨터연구가 안철수씨는 의대 출신이다. 그는 당초 공대를 가고 싶었으나 부모의 뜻에 따라 의대로 진학했다고 한다. 만약 그가 의사 생활에 만족했더라면 우리 정보통신은 지금같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능한 의사도 필요하지만 정보통신이나 생명공학의 천재들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인재들이 모두 의사나 변호사 쪽으로 몰려간 대가가 언젠가 ‘핵심 인재 부족’이라는 엄청난 파괴력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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