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7시 49분


◇ 영혼의 도시 라사로 가는길/알렉산드라 다비드 넬 지음 김은주 옮김/527쪽 1만8000원 다빈치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1868∼1969)은 1924년 티베트 라싸를 찾은 최초의 서양 여성이다. 어려서부터 어딘가로 떠나는 걸 좋아했던 그녀는 20대 인도여행을 시작으로 평생 구도의 여행을 계속했다.

무정부주의자, 아니 국가권력의 폐해를 혐오하는 평화주의자였던 그녀는 파리와 브뤼셀 등에서 동양언어와 문화를 연구하고 인도 티베트 터어키 중국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수많은 글과 책을 썼으며, 한편으로는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로 활약하는 등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며 철학적 이상을 꿈꾸었다.

프랑스인들이 20세기의 가장 모험적인 여성으로 꼽는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오른쪽). 사진제공=다빈치

페미니스트였던 그녀가 36세 되던 해 결혼한 남자는, 먼 길 떠나는 아내의 역마살을 이해하고 18개월로 예정된 여행이 14년으로 늘어나도 꾸준히 경비를 지원하고 평생 우정을 지켜주던 성실한 남편이었다.

고향을 떠난 지 3년이 넘은 사람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향수병에 걸리고 만다. 고향은 더 이상 이전의 고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생 나그네길을 떠돌았던 알렉산드라는 100년 하고도 10개월을 살았으니, 80년 가까운 세월을 향수병에 시달렸을 것이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디는 삶의 여정, 그녀가 유럽에서 아프리카, 인도에서 중국으로 헤매다 드디어 영원한 그리움의 원천, 티베트로 발길을 돌린 까닭 또한 이 향수병을 달래는 방편이 아니었을까.

50대 중반 그녀는 일본을 거쳐 합천 해인사와 금강산까지 먼 길을 돌아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금단의 땅 티베트에 발을 들인다.

당시만 해도 티베트는 외부세계와 교류가 없던 터라, 10여년에 걸친 5번의 시도 끝에 그녀가 여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파리 센 강변에 모여 살던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흥분시켰다.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은 서양의 뿌리인 인도와 동양의 뿌리인 티베트라는 식으로 요약되어 알렉산드라가 물꼬를 튼 순례의 길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로 정리된 알렉산드라의 여행기에는 고단하고도 흥미로운 여정뿐 아니라 티베트의 독특한 풍습과 신앙도 세세히 담겨 있다.

또한 티베트 문화 속에 배어 있는 신비적 요소를 서양의 시각으로 비판하려는 알렉산드라와 그녀를 동반했던 티베트 청년 용덴의 시각 차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요즘은 길 떠나는 여자가 많아져서, ‘여성여행’은 새로운 여행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여성여행사에서는 여성전용 순례지를 안내하고 여성호텔에서는 여성전용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여성의 여행’은 바로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웅호걸을 따르거나 민족의 대이동을 따라 간 이전의 여행들은 대개 정복의 목적을 가진 것들인 데 비해, 그녀의 여행은 버리고 사는 삶의 자유와 그것의 고귀함을 깨닫는 작업이었다.

여행에서 즐거운 일 중 하나는 ‘변장’을 통해 나를 실험하는 행사다.

망명 중인 정치범이라고 둘러대거나 실성한 사람 노릇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탁발 순례를 나선 시골노파 행세를 하며 3000㎞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여행했다.

여행 중에 간혹 장난기가 발동되면 그녀는 큰 소리로 다음 구절을 읊기도 했다.

“직 메 날졸마 가(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여성 수행자).”

김재희 페미니스트 잡지 ‘IF’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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