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열린마음 열린세상]˝대현아!네죽음 헛되지 않도록˝

  • 입력 2002년 11월 13일 18시 31분


“대현아, 너 이제 하늘에 핀 꽃이 되었구나….”

눈물로 쓴 자기 시를 낭송하면서 시인 이진영씨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장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너를 보내고서야 우린 비로소 보았다… 학원 폭력의 무수한 발톱들… 그때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다… 비록 너의 어린 몸은 갔어도 너의 맑은 영혼은… ‘청소년폭력 예방재단’으로 활짝 피어나….” 우린 차마 그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용서의 삶 보여준 가족들▼

1995년 어느 여름날 아침의 악몽이 떠올라서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끝내 투신 자살한 대현. 우등생이요, 모범생 개근생 반장 운동선수였던 고1 대현이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도대체 그 부모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들은 의연했다. 극도의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고 ‘청소년폭력 예방재단’(청예단)을 창립한다. “다시는 나같이 가슴 아픈, 죄 많은 부모가 나와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학교는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우정의 마당이 되어야겠다.”

그러길 어언 7년, 아버지 김종기씨는 생업도 포기한 채 오직 이 일에만 매달렸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청소년을 걱정하는 어떤 모임에도 그는 빠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지켜보면서 우린 정녕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학교 폭력, 이건 처음부터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다. 많은 시민들이 그의 희생정신에 감동되어 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오늘, 이 자리에도 400여명의 착한 양식들로 가득 찼다. 이제 그는 그의 혼이 담긴 ‘청예단’ 이사장 자리를 내놓기로 한 것이다.

“이젠 많이 치유되었나 했는데, 여기서 하는 모든 일들이 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게 애비의 정일까요, 가슴 저 깊은 언저리에 언뜻 스쳐 가는 애련함 때문에….” 그의 이임사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을 파고 흐르는 피눈물을, 자식 키워 본 우리가 어찌 모르랴.

“당신이 예수요.” 나는 서슴없이 그렇게 외쳤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쓰린 한을 속으로 안고 괴로워하면서, 남의 집 아이들의 안녕을 위해 진력할 수 있을까. 생업도 포기한 채. 그의 바다보다 깊고 넓은 관용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10월 24일 ‘애플데이(Apple Day)’를 창설하면서 화해와 사과의 상징으로 사과를 보내자는 학교 폭력 근절운동에 가장 앞장서 목소리를 높인 것도 그였다. 폭력보다 무서운, 사과에 인색한 우리 풍토가 너무 아쉬워서였다. 그는 이임사에서 “그 후에라도 가해자나 그 부모가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게 가장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학교의 어두운 뒷골목에 외로운 등대지기로 버티고 섰던 그가 이제 퇴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더 넓은 이상향 건설을 위해 어느 나라에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간의 소중한 경험을 나누겠다는 큰 뜻에서다. 끝까지 고맙다.

그런데 ‘청예단’을 누가 맡지? 누가 저 힘든 일을 맡아 할 수 있을까. 우린 그게 적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2대 이사장을 패기 넘치는 예술종합학교 임웅균 교수가 맡게 된다니 우린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는 세계적 테너다. 한국의 자랑이요, 자존심이다. 세계 무대를 누비고 다녀야 할 그에게 이건 너무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우린 그것도 걱정이고 미안했다. 하지만 그의 결의에 찬 취임사는 그런 기우도 말끔히 씻어 주었다.

▼당신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불우 어린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에 더욱 안심이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그는 불우시설 아이들을 1000명씩이나 공연장에 초대한다. 푸짐한 먹을거리를 놓고 공연을 함께 관람하면서 어린이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 주곤 한다. 그가 큰 무대에서 동요를 즐겨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그날 밤도 동요를 부르면서 어린이처럼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으로 고맙고 인상적이었다.

‘청예단’을 맡는다는 건 그날부터 고생바가지를 뒤집어 쓸 각오를 해야하는 일이다. 해서 자식을 둔 부모님들께 호소한다. 청예단을 기억하자고. 어쩌면 당신 집에도 제2의 대현이 혼자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김종기, 임웅균, 그리고 그 가족분들, 당신네가 있기에 우리에겐 내일에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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