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누더기' 경제특구법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9시 15분


국회 본회의에서 69개 법안이 무더기통과된 8일 저녁 국회에선 ‘경제 특구 설치법’ 통과 여부를 확인하느라 기자들간에 소동이 빚어졌다.

국회사무처가 작성한 ‘처리예정 법안’ 목록에는 이 법안이 포함돼 있었으나 본 회의에서는 처리되지 않아 혼란이 빚어진 탓이었다. 확인 결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날 오후 긴급 원내총무 회담을 갖고 “1주일만 더 검토한 뒤 14일 처리하자”고 합의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양당이 이처럼 법안통과를 보류한 것은 경제특구설치법안이 지역 이기주의에 밀려서 ‘누더기’로 변한 데 대한 부정적 여론 때문이었다. 문제는 6일 재정경제위원회, 7일 법사위원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당시만해도 의원들이 전혀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A의원은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신문 사설에서 반대의견이 개진된 것을 보고서야 뒤늦게 아차 싶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시행착오는 허술하고 엉성한 법안처리 과정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인 셈이다.

정부는 특구설치방안을 올 7월29일 확정했으나 정기국회 폐회를 3주 앞둔 10월17일에야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결국 시간에 쫓긴 재경위는 법 제정을 앞두고 ‘공청회’를 열도록 한 내부규정을 생략했다.

상임위 토론과정에서는 한술 더떠 대구 등 내륙지역 출신 의원들의 민원으로 법안의 내용이 ‘국제공항 이나 항만이 없는 지역’도 특구설치를 할 수 있도록 뒤바뀌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정부가 인천 부산 등을 목표로 법안을 만드는 등 지역주의에 불을 질렀다”며 ‘내고장 챙기기’ 발언을 계속했다.

문제는 국회가 처리시한으로 잡은 ‘1주일 뒤’에 과연 국가발전 계획에 부합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법안심의를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나라의 얼굴’인 경제특구를 만드는 기초작업마저 국회의 무성의와 집단이기주의로 삐걱거린다면 국회가 국민 앞에 설 자리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승련기자 정치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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