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예산 이젠 바로잡아야

  • 입력 2002년 11월 7일 18시 06분


국회 정보위원회가 국가정보원의 내년 예산 100억원을 삭감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80억원을 삭감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국정원 예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얼마를 깎았느냐에 있기보다는 연간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국가정보기관 예산이 실제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를 국회가 제대로 검증하고 있느냐는 데 있다.

대답은 그렇지 못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 예산은 국회 정보위에서 비공개로 심사하도록 되어 있으나 예산 산출 내용과 첨부 서류도 없이 총액만 내놓는 지금의 체제에서는 철저한 검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활동비’다. 매년 수천억원씩 소요되는 ‘활동비’는 기획예산처 소관 예비비에 숨겨져 편성된 뒤 총액 기준으로 예결산 심의가 이뤄진다.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썼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쓰인 ‘활동비’가 2000년에 4047억원이었고 2001년분은 총액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국정원측은 예산 얘기만 나오면 ‘국가기밀’을 내세운다. 물론 국가정보기관의 특성상 세세한 내용까지 일반에 공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기밀과 철저한 예결산 검증은 이제 별개 문제로 정립되어야 한다. 우선 예산처 예비비에 숨긴 국정원 활동비는 국정원 본예산에 잡아 예결산 심의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아울러 총액만 내놓도록 한 지금의 국정원법도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언제까지 잘못된 관행하의 ‘성역(聖域)’을 고집하려 든다면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울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정원(옛 안기부 포함)은 예산의 선거자금 전용 및 여러 ‘게이트’ 의혹에 연루된 전과가 있다. 전현직 국정원장이 대통령 아들에게 용돈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 이는 근본적으로 예산의 불투명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제는 국가정보기관도 투명해져야 한다. 그러자면 국정원 예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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