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중국기사들 주요대회 대거 진출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7시 35분


17일 울산 현대호텔에서 열린 삼성화재배 세계오픈바둑대회 8강전 조훈현 9단과 뤄시허(羅洗河) 9단의 대결. 조 9단은 뤄 9단에게 극적인 반집 승부를 거둔 뒤 환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 반집 승부에서 이긴 기사가 웃음을 보이는 건 이례적이다. 하지만 조 9단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 것은 필패(必敗)의 바둑을 반집으로 이겼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

이 대회 8강에는 중국 기사 6명과 한국 기사 2명이 진출했다. 전날 대국에서 최명훈 8단이 중국의 왕레이(王磊) 8단에게 패하며 한국 기사는 조 9단만 남았다.

흑 조훈현 9단 백 뤄시허 9단

백 1로 젖혔을 때 흑 2가 어이없는 실수. 조 9단은 백이 ‘가’로 끊지 않고 3으로 먼저 넘어가는 수를 깜빡한 것. 백 3에 이어 흑이 ‘가’로 이으면 하변 흑대마가 모두 죽는다. 조 9단은 어쩔 수 없이 흑 ▲를 내주고 백 △를 잡았지만 대략 15집을 손해봤다. 이 순간 사실상 바둑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뒷날 좌상귀 패를 담보로 한발 한발 추격해간 조 9단이 끝내 역전에 성공했다.

그동안 세계대회 18연속 우승의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던 한국 바둑이 드디어 중국의 기세에 꺾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팽배했다.

더구나 초반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던 조 9단이 어이없는 착각으로 상대방에게 15집 이상의 손해를 보자 검토실에는 ‘중국 4강 독식’이라는 신기록을 헌납하게 됐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흔들기’의 대가 조 9단은 마지막 1분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추격에 추격을 거듭해 303수만에 흑으로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검토실에서 모니터로 이 바둑을 지켜보던 창하오(尙昊) 9단도 “이건 기적이야”하고 나지막히 한마디를 던졌다.

하지만 최근 중국 바둑의 기세는 ‘황사’처럼 거세다. 지난달초 도요타 덴소배에서는 4강에 중국기사가 3명이나 진출했다.

이창호 9단이 홀로 버티며 결승에 진출하긴 했지만 우승을 누워 떡먹기처럼 생각해오던 한국 바둑팬과 기사들은 이제 아슬아슬한 느낌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이 9단은 10일 중국 갑조리그에서 구리 7단에게 참패하며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중국세의 강세는 기성 기사들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달 초 열린 2002 한중일 신예바둑대항전에서 중국팀은 한국 A, B팀과 일본팀을 꺾고 3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한국은 조한승 안영길 최철한 박영훈 송태곤 등 최근의 강자들이 출전했으나 3위에 그쳤다.

이번 삼성화재배에서 창하오 9단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한 중국 신예 왕위후이(王煜輝) 7단은 “3∼5년내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진석 6단은 “아직 이창호(도요타덴소배) 조훈현(삼성화재배)의 원투펀치가 남아있긴 하지만 지난 3, 4년처럼 한국이 모든 대회를 싹쓸이하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며 “앞으로 한동안 중국과 한국이 정상을 각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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