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치치와 후세인

  • 입력 2002년 10월 8일 18시 49분


남자들의 오랜 전쟁에 지친 교전국 여성들이 모였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장내는 방법이 없을까. 아테네의 똑똑한 여자 류시스트라테는 ‘섹스 파업’을 제의한다. 스파르타에서 온 건장한 여인 람피토가 동의했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장군도 아름다운 헬레네의 가슴을 보고 칼을 내던졌다면서. 고대 그리스의 희극 ‘류시스트라테’의 한 대목이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욕과 또 다른 본능임이 분명한 전쟁욕 사이에서 희극적으로 번민하던 남성 전사들은 결국 아내들에게 굴복한다. 싸움을 멈추고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2400년 전 허구 속의 류시스트라테는 평화를 위해 성 파업을 일으켰지만, 이번엔 실제인물 라 치치올리나가 평화를 위해 성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이탈리아의 포르노배우 출신으로 하원의원을 지낸 치치올리나씨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면 나 자신을 후세인에게 바칠 수 있다”고 했다는 거다. 물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이 공개적 성 상납 유혹을 받아들일 리 없고, 발언 장소 역시 에로영화제였으니 듣는 이들은 웃고 넘어가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후세인 대통령의 정부였다고 주장하는 여자에 따르면 그는 성적 능력을 높이기 위해 종종 비아그라를 복용하는 사람이라니, 혹시 모를 일이다. 내심 솔깃했는지도.

▷성과 폭력, 전쟁, 테러의 상관관계는 점잖은 학자들도 진지하게 연구하는 주제다. 호주의 정치학자 데니스 앨트먼은 ‘글로벌 섹스’라는 책에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현 대통령의 아버지)은 성적 능력이 떨어진 나머지 남성성으로 이를 보상하기 위해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공격했다”는 학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공격성은 종족 번식을 꾀하는 남성의 유전자적 본능이며, 성과 여성을 통제하는 시대와 사회일수록 폭력과 테러,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이 방면에 관심있는 학자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전쟁이 나면 전리품이나 상대국에 대한 응징 수단, 또는 ‘인종 청소’를 위해 여성은 가장 잔인하게 유린당해 왔다.

▷포르노배우의 말이기는 해도 “내 젖가슴은 남을 해롭게 한 적이 결코 없는 반면 오사마 빈 라덴과의 대 테러전은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그의 얘기는 그래서 자못 의미심장하다. 모성과 생명, 보호의 상징이자 테러의 대척점으로서의 가슴을 일깨워 주어서다. 그런데 이상하다. 9·11테러의 주범이 빈 라덴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대 이라크 전쟁의 필요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치치올리나가 상대를 바꾸어서 제안을 해 보는 게 어떨는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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