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수곤/건교부 절개지 정책 재검토를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19분


올해 8월 중순 일주일간 집중호우와 8월말 태풍 ‘루사’의 집중호우로 총 266명의 인명손실과 8조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산사태와 절개지 붕괴로 전체 인명피해 중 30%인 81명이 사망하고 부상자와 재산피해도 상당히 많았다. 산지를 깎아 도로나 주택을 건설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절개지는 바로 인근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붕괴할 경우 인명 피해가 크다.

교량이 무너지면 교량 건설 관계자에게 하자 책임을 묻지만, 절개지가 무너지면 대부분 복잡한 지질을 탓하고 천재지변으로 돌려 정부에서 복구비용을 지출한다. 따라서 지질조사를 강화한 책임 건설이 필요하다. 설계, 시공, 감리 단계에서 각각 지질조사를 수행해 서로 미비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특히 최종 굴착면에서 정밀 지질조사를 의무화하고 그 기록을 준공 뒤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개선하지 않는 한 절개지 붕괴는 내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절개지 대책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

첫째, 건교부는 암석절개지 기준을 현재의 63도 기준보다도 63∼40도로 경사를 더 완화하겠다고 한다. 암석 절개지는 절리에 따라 위험도에 차이가 나므로 절개지 경사가 완만하다고 무조건 안전한 것이 아니고, 가파른 절벽도 절리에 따라 안전할 수 있다. 암질이 양호한 경우 외국처럼 오히려 가파른 73도를 기준으로 하고 완화가 더 필요할 경우 정밀조사 자료를 첨부하고 공사를 실시하면 된다.

둘째, 높이 50m 이상의 절개지는 깎아낸 후 무너질 위험을 고려해 절개지 하부에 터널 식 콘크리트를 또 만든다고 한다. 높이 30m 이상일 경우 애초 설계 당시 터널로 하거나 노선을 변경해 작은 절개지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건교부는 내년부터 높이 50m 이상의 절개지는 2종 시설물로 분류해 정기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금번 태풍 ‘루사’ 때 강릉시 왕산면 국도의 높이 7∼10m의 소규모 절개지가 붕괴해 차량 6대와 4명의 인명피해를 낸 사례에서와 같이 절개지 규모가 비교적 작더라도 절개지 하부에 쐐기 역할을 하는 암석을 굴착하면 대규모로 지반이 붕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절개지에 대해 철저한 지질조사가 필요하다.

건교부는 국도 절개지 총 9300개 중 3500개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1조2000억원의 막대한 보수비용으로 연차적으로 보강하고 있다. 금번 강릉시 왕산면, 작년 춘천시 용산리에서와 같이 위험하다고 분류되지 않은 국도절개지가 종종 붕괴되어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므로 판단방법과 대책공법의 적정성 여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밖의 시군 절개지도 관리가 허술하며 수많은 민간 절개지는 아예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절개지에 대한 종합적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현황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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