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CEO의 발상은 뭔가 달라

  • 입력 2002년 8월 27일 17시 43분


22일자 동아일보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리모컨 개선지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요지는 이 회장이 7월에 열렸던 삼성전자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둘러본 뒤 리모컨 기술개발을 화두로 던졌고, 최근 삼성전자 내부에 팀이 구성돼 연구에 착수했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의 기계와 기술에 대한 관심은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 ‘숨겨진 1인치를 찾았다’는 광고카피로 유명한 ‘명품 플러스 원’ TV도 이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방송국 관계자로부터 “현재의 TV는 방송국에서 송출된 화면 중 양쪽의 8㎜가 잘린 채 보여준다”는 얘기를 들은 뒤 곧바로 개선 지시를 했던 것이지요.

최근의 리모컨 관련 지시 내용은 “온갖 가전제품이 리모컨을 사용하는데 각각 따로 사용하는 것이 번거롭고 기능도 복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사소한 부분에서 세일즈포인트를 찾아내 고객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듯합니다.

기사를 준비하던 중 마침 7500여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로 구성된 미국의 바텔 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봤습니다. 엔지니어와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10년 뒤 뜰 제품’을 물었는데 이 중 첫 번째로 꼽힌 하이테크 제품이 바로 ‘만능 리모컨’이었습니다.

리모컨 하나로 가전제품 전등 에어컨 보일러 등은 물론 차고 문이나 자동차 문까지 여닫을 수 있는 등 10년 후 우리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것이지요.

보고서를 읽으면서 ‘최고경영자(CEO)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사실 소비자들의 눈과 손을 사로잡는 세계적인 제품은 복잡한 연구보다는 일상의 필요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런 필요를 발견하고 개선을 생각했을 때, CEO가 관련 분야에 대해 직관과 기술적 관심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경쟁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중현·경제부
취재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 관계자들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얘기해줄 내용도 없다”며 극도의 ‘보안’을 지키더니 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에는 “역시 회장님은…” 하고 탄복하더군요. 또 이 회장 본인의 긍정적 이미지 구축에도 도움이 됐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박중현 경제부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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