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커넥션]'주먹관리' 보스에 月5000여만원 지급

  • 입력 2002년 8월 13일 18시 52분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한 주민 조합총회에는 어느 곳이든 짧은 머리에 까만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건설사와 용역계약을 맺은 철거용역회사가 동원한 사람들로 등록된 경호업체에서 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폭력조직에서 동원된 폭력배들이다. 건설사가 ‘주먹’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건설사와 주민, 컨설팅사 등으로 이름을 내건 거간꾼 등간에 이해관계가 그물처럼 얽힌 재건축 시장에서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서는 시공사로 선정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철거용역업체는 재건축 과정에서 원주민 이주와 건축물 철거 등을 담당한다. 대개 건설사와 시설물 관리 계약을 맺고 일한다. 그러나 철거는 이들이 수행하는 많은 업무 중의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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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가 선정되기 전에 있는 조합설립총회의 준비작업에서부터 경쟁사가 개최하는 각종 행사의 무산 작업, 조합장 협박과 매수, 심지어 특정인에 대한 청부폭력 등 건설사가 요구하는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철거업체는 어떤 아파트 단지에서 재건축이 이뤄질 조짐이 보이면 건설사의 각종 행정절차를 대행해 주는 컨설팅사로 가장해 시장에 뛰어든다. 이때 건설사로부터 컨설팅 명목으로 받는 돈은 재건축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0억원 선. 이 돈은 대부분 해당 건설사가 공사를 따내는 데 필요한 주민동의서 확보나 조합장과 조합임원 매수 등에 쓰인다.

이들 업체는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된 뒤에는 당초 약정에 따라 건설사와 철거용역계약을 맺는다. 공사금액은 3000가구를 기준으로 할 때 철거비 명목으로 120억원, 원주민 이주관리 명목으로 50억∼100억원 등 200억∼250억원 선이다. 이때가 바로 원주민을 쫓아내기 위해 각종 협박과 폭행을 행사하는 시기다.

본격적인 재건축 공사가 시작되면 철거업체들은 그동안 건설사가 공사를 따내기 위해 ‘퍼부은’ 돈을 대신 회수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미 책정된 공사비를 올리기 위해 조합장을 위협하거나 뇌물을 준 뒤 고발해 ‘뒤통수를 치는’ 등 본격적인 조합장 길들이기에 나선다.

또 아파트 건축이 끝난 뒤에는 설계 변경 등을 이유로 추가부담금을 요구하며 주민을 압박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철거업체가 책임을 떠안는 게 이 업계의 불문율이다. 해당 건설사를 ‘물고 들어갈’ 경우 ‘다음 일’을 약속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철거업체의 인력동원 메커니즘〓철거업체들의 인력 동원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자체 보유한 인력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같은 계보의 폭력배를 동원한다. 또 ‘소개소’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기도 한다.

철거업체에 등록된 공식 직원은 대개 10명 안팎. 이 중 전문 폭력배는 2, 3명으로 이들은 폭력조직의 중간 보스급으로 휘하에 30∼40명을 데리고 있다. 30명 정도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월 5000만원 정도. 이는 조폭의 숙박비, 유흥비, 생활비에다 변호사 비용, 각종 로비 비용 명목이다.

철거업계 관계자는 “청부 폭력에 동원된 폭력배 한 사람에게 드는 비용은 변호사비를 포함해 100만∼200만원 선”이라며 “30여명이 동원됐다면 철거업체는 3000만∼6000만원가량을 중간 보스에게 지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철거업체 Y사는 서울 신촌과 강남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전남 목포와 신안 출신의 ‘새마을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철거용역업체 D사는 ‘광주 오비파’, S사는 ‘전주오거리파’ 등이 장악하고 있다.

또 서울 종암동의 ‘영구’, 미아리 ‘하마’, 정릉의 ‘뽕아’ 등도 최근 재건축 시장에 뛰어든 조폭들이다. 이런 조직은 전국적으로 20여개로 추정되며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조직원을 관리하고 있다.

한편 철거업체들은 조합총회 무산 작업이나 원주민 강제이주처럼 사람 동원이 많이 필요한 경우에는 ‘소개소’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는다.

이들 소개소는 자체 조직을 갖고 있다가 요청이 들어오면 이른바 ‘프리랜서’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프리랜서에는 각종 무술 관련 대학 출신의 학생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대학생들까지 돈벌이 나서▼

철거용역업체들이 인력 동원을 위해 소개소를 통해 공급받는 이른바 ‘프리랜서’에는 폭력 전과자나 불량배도 있지만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학생들까지 몰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모 대학 무술 관련 학과의 관계자 P씨(30)는 “인력동원 요청이 들어오면 후배들에게 필요한 인원을 말하고 이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그 아래 후배들을 동원한다”며 “피라미드식 인력동원이기 때문에 적발돼도 인력동원의 전모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재건축 업계에 따르면 최초 인건비가 1인당 15만원으로 책정될 경우 소개 역할을 맡은 팀장은 1인당 1만원 가량을 제한 뒤 하위 인원에게 일당을 준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일당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모집방식 자체가 피라미드 구조이기 때문에 한 단계를 건너면 서로가 서로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최근 한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을 선출하는 총회에서 ‘팀장’ 역할을 했다는 P씨는 이런 방식으로 순식간에 500명을 동원했다고 밝혔다. 조합장 반대파들이 200여명의 인원을 동원해 총회를 무산시킬 계획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자 이의 두 배가 넘는 500명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P씨는 이 날 하루 인원을 조달해주고 500여만원을 벌었다.

물론 대학생 프리랜서는 머리 수를 채우는 ‘세(勢) 과시용’인 경우가 많다. 실제 청부폭력이나 ‘위험한’ 일은 대부분 계보가 있는 조직폭력배가 맡는다.

갑자기 사람이 필요할 땐 인원수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덩치에 관계없이 동원하고 심지어 여학생까지 끌어들인다는 것. 고학년일수록 모집책인 팀장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는 주로 저학년생들이 투입된다. 이런 ‘아르바이트’는 무술 전공 학생들 사이에는 철저한 비밀이다. 주변에 알려질 경우 학교에서 ‘매장’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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