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진영/´친인척 감시기구´ 만들라

  • 입력 2002년 7월 11일 18시 36분


지난 정권에서 본 대통령 아들의 비리 드라마가 주인공을 바꿔 또 재연되었다. 대통령의 3남에 이어 2남이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환멸, 배신감을 어찌 말로 다 할까. 친인척 문제는 염려 말라고 호언하며 집권했던 대통령이기에 분노와 배신감은 더하다. 대통령 아들이라는 최고 권력자 측근의 비리는 그 부정적 영향이 여타 개인의 부정부패 사건보다 크다. 서민들의 위화감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적으로 부패구조를 종식시키는 데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윗물이 썩었는데 어찌 아랫물더러맑아지라고 하겠는가.

이전 대통령 아들의 전례를 보고서도 전혀 배운 것이 없는 듯 행동한 김홍업씨의 대담함과 윤리의식의 불감증이 놀랍다. 그리고 집안 문제는 염려 말라고 한 대통령의 말은 실없는 소리가 되고 말았다.

▼돈세탁 치사한 방법까지 동원▼

홍업씨가 기업들로부터 이런저런 청탁과 함께 부정한 돈을 받고 공공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개혁과 구조조정을 외쳐온 정부의 구호와 그간의 노력에 정면 배치된다. 온 국민이 힘들게 수행해온 개혁과제에 대통령의 아들인 그는 공감하지도 동참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개혁의 기치가 무색하게 권력 남용, 부정한 돈 수수와 돈세탁에 이르기까지 구시대의 부패행위를 답습했다. 개혁을 내건 국민의 정부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을 어찌할 것인가.

공공연한 권력 남용과 금품 수수 관행이 아직도 버젓이 통용되는 체제의 문제도 심각하게 짚어보아야 한다. 현대와 삼성 등의 대기업이 ‘대가성 없는’ 자금을 거저 주었다고 주장한다. 수사를 더 해 보아야 하겠지만 대가성이란 눈에 드러나는 일차 방정식의 인과관계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아태재단의 운영비로 받았다고 하는데 이 땅의 하고많은 연구소와 재단 중에 왜 하필 아태재단에 대기업들이 그 많은 돈을 일없이 현 대통령 재임 중에 주었는지 국민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떳떳한 돈이라면 홍업씨는 왜 그 돈들을 자기 집 베란다에 보관했다가 치사한 방법으로 돈 세탁을 했는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위기 이래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투명하게 하고 권력과 유착하지 않고 시장의 경쟁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생존을 위한 철칙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아직도 권력 측근에 돈을 집어 주고 ‘보험’을 들거나 청탁을 하는 것은 스스로 기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정경유착이라는 구 시대의 병폐를 온존시키는 행위다. 정경유착이 외환위기를 가져온 원인으로 지목된 것을 잊었는가.

대통령 아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데는 그에 동조해 협력한 공공기관과 공직자의 문제도 있다. 공직자들이 준법주의와 공직의 중립성 원칙에 투철하다면 대통령 아들이 접근한들 무슨 상관을 하랴.

이 사건은 최고 권력자 측근의 비리에 관한 한 우리 체제가 그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고 권력자 가족의 부패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해 제도적 권력 견제가 약한 후진국형 범죄다. 사적으로 개인일 뿐인 홍업씨가 대통령 아들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국가기관들을 상대로 영향력을 휘두르고 그 대가로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제도적 권력 견제와 투명도가 낮다는 얘기다. 권력의 남용과 부정부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결단코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없다. 이 후진국형 현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청된다. 개인의 윤리의식에 의지할 수 없을 때는 제도적 장치를 견고히 하고 엄격히 실행하는 수밖에 없다.

▼청와대 선처 부탁 사실인가▼

우선, 권력자의 친인척 비리를 감시하고 조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각 당은 마침 대통령 친인척 감시기구를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는데 현 부패방지위원회에 그 기능을 두어 강화한다든가, 여타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각 당은 이 사건을 기회로 심각하고 진지하게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최고 권력자의 측근과 친인척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제도와 실천이 필요하다.

대통령 아들의 권력형비리가 되풀이되는 것은 대통령 개인의 비애이기 전에 국민 전체의 불행이다. 권력형비리를 도려내기 위해 대통령은 제 살 도려내기부터 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돈의 대가성이나 거래 관계에 관해 아직 의문이 많다. 청와대 쪽에서 선처를 부탁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철저하고 엄격한 수사를 보장하고 홍업씨를 비롯한 관련자에게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참담한 심경의 국민에게 다소라도 사과하는 길이다.

김진영 부산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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