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시대를 넘어 자유 찾아 훨훨 '허균 평전'

  • 입력 2002년 7월 5일 18시 03분


◇ 허균 평전/허경진 지음/424쪽 1만3000원 돌베개

시대를 앞선 개혁 사상과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조선시대 지식인 교산 허균(喬山 許筠·1569∼1618).

한글 소설의 효시 ‘홍길동전’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소설뿐 아니라 한시 비평 논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학문을 이룩하며 중국에까지 이름을 날렸던 조선의 대문장가였다.

또 엄격한 유교 윤리와 예학(禮學)에 사로 잡혀 있던 당대 사대부들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불교 도교 천주교 등 여러 사상을 수용했으며 소외된 백성의 입장에서 유교 사회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새로운 정치 사상을 주장했던 개혁적인 지식인이기도 했다.

이 책은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시대를 거역했던 허균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시대로부터 외면당했던 그의 사상과 학문을 현재의 역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특히 그의 삶의 궤적을 통해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봉건체제가 흔들리고 당쟁이 격화되면서 유교사회의 이념과 질서가 동요되던 시대적인 상황과 역사 읽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허균 작품에 대한 면밀한 해석과 인용을 토대로 그의 생애를 복원시키고 있다.

사천의 애일당 터에 세워진 허균 시비 [사진제공=돌베개]

허균이 살다간 광해군 시절은 임진왜란을 치른 뒤 봉건체제가 뿌리부터 뒤흔들리면서 새로운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시대였다. 허균은 당대 모순과 문제점을 꿰뚫어 보면서 이념적인 개혁의 방향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민본사상과 국방정책, 신분계급의 타파, 인재등용과 붕당배척 이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정론(政論)’ ‘병론(兵論)’ ‘학론(學論)’ ‘호민론(豪民論)’ ‘유재론(遺才論)’등 그의 주요 논설의 핵심적인 부분을 인용하면서 허균의 정치사상을 조명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호민론’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그의 민본사상.

‘천하에 두려워 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범이나 표범보다도 더 두렵다. 그런데도 윗자리에 있는 자들은 백성들을 제멋대로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 먹는다. 도대체 어째서 그러한가.’

또 ‘유재론’에서는 ‘하늘이 재능있는 사람을 내었는데, 사람이 이를 가문과 과거로 한정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으로 인재 등용의 불평등을 비판해 인간차별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모순된 제도를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벼슬 길에 나아가지 못한 인재로서 서자(庶子)와 개가(改嫁)한 집 자손을 들었는데 적서 차별을 부르짖는 ‘홍길동전’은 그의 이런 생각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당시 그는 이단으로 지목되던 불교와 도교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고서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이런 시를 읊기도 했다.

‘예절의 가르침이 어찌 자유를 얽매리오/뜨고 가라앉는 것을 다만 천성에 맡기리라/그대들은 모름지기 그대들의 법을 지키게/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이루겠노라.’(문파관작·聞罷官作 중)

그는 은둔생활 방법을 기록한 ‘한정록(閑情錄)’과 여러 한시들을 통해 도교의 신선사상과 은둔사상에 깊은 동경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중국에 갔을 때 천주교의 기도문을 가지고 올 정도로 새로운 문물과 서학의 이론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에 대한 댓가는 비쌌다.

그는 매번 탄핵을 받아 궁지에 몰렸으며 급기야, 1618년 8월 그의 심복이 남대문에 백성들을 선동하는 격문을 붙였다는 것이 드러나 잡혀 들어가게 된다.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했고,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결국 허균은 역적모의를 하였다 하여 동료들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했다.

파란만장했던 조선의 한 지식인을 통해, ‘제도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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