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달디단 설탕 역사속엔 '쓴맛'이 '슈거 블루스'

  • 입력 2002년 6월 21일 17시 51분


◇ 슈거 블루스/윌리엄 더프티 지음 이지연 최광민 옮김/312쪽 1만1000원 북라인

빵 아이스크림 커피 콜라 등에 많이 들어 있는 설탕. 아다시피,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 즙을 화학적으로 가공해 만든다. 이 공정을 거치면서 90%에 이르는 섬유질과 단백질이 제거된다. 따라서, 설탕을 많이 먹으면 체액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게 당뇨병을 만드는 여러 조건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설탕 중독은 조울증, 주의력 결핍장애, 정신 분열증의 원인이 된다고도 한다.

‘당뇨병’이란 말을 처음 붙인 사람은 17세기 영국 의사 토머스 윌리스다. 그는 당시 부유한 유명 인사들 오줌이 갑자기 달착지근 해지고 배뇨 횟수가 많아진 것을 발견하고 소변이 많이 배출된다는 뜻의 ‘diabetes’에 ‘꿀의 달콤함’이란 뜻을 가진 ‘mellitus’를 함께 붙였다. 질병의 원인을 ‘설탕’이 아닌 애매한 ‘꿀벌’에게 돌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윌리스는 환자들 대부분이 설탕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는 사업자라는 것을 알아 챘기 때문에 설탕 탓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처럼 서구의 정치·의학·과학사를 통해 왜곡되고 숨겨진 설탕의 역사를 파헤친다. 그에 따르면 ‘니코틴이나 헤로인 이상의 중독성을 가진 우리 세대 제 1의 살인 물질인 설탕은 다종다양한 정치적 역사적 경제적 이유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고대인에게 사탕수수는 머나먼 땅 인도에서 가져와야 하는 값비싼 사치품이었다. 서기 600년에는 페르시아 땅에서도 사탕수수가 재배되기 시작했는데, 즙을 딱딱하게 굳힌 사카룸은 기적을 일으키는 진귀한 약품이었다. 그러다, 이슬람 제국에 의해 전 세계에 퍼지면서 감각적 쾌락을 좇는 습관성 물질로 변질됐다. 십자군은 사탕수수 발효액을 찾아 성지를 헤매고 다녔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해 유럽에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노예제도는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필수적이었다.

중세때, 일부 의사들은 ‘설탕에 중독성이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교회와 정부의 적이 되었다. 설탕을 비난하는 것은 곧 설탕 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정부에 반항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어 근대 자본주의로 들어오면서 설탕업계가 막대한 돈으로 과학자들을 은밀히 매수하는 한편 왜곡된 설탕 광고로 대중을 현혹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또 설탕 열풍이 쿠바의 밀림을 어떻게 황폐화 시켰으며 정제된 곡식과 정제된 설탕의 유해성을 지적했던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어떻게 무시되고 왜곡됐는가를 덧붙인다.

책에는 23년 동안 당뇨병을 앓다가 결국 인슐린 쇼크로 죽은 친한 동료 기자를 보면서 설탕 중독이었던 저자도 마침내 설탕을 끊고 현미, 채소, 콩, 간장, 두부, 된장, 제철 과일 등의 식이 요법으로 건강을 회복한 과정이 소개돼있다. UN 산하 ISO(국제 설탕 기구) 연감에 따르면 2000년 국가별 1인당 설탕 소비량(kg)이 싱가로프 72.9, 미국 32.6, 한국 21.4이고 세계 평균은 20.9다.

음식만 아니라 세상도 점점 달아지고 있다. 어쨌든,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때여서 설탕 하나를 붙잡고 천착해 간 저자의 노력에 관심이 간다.

(참고로, ‘슈거 블루스(Sugar Blues)’는 192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대중 가요다. 우울한 감정을 달콤한 설탕을 먹으며 잊으려 한다는 내용이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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