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최고기관이 선거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 하급 재판부에 엄정한 법 적용을 촉구하고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대법원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한나라당의 정인봉 정재문 의원과 민주당의 박용호 장정언 의원 등 판결 대상자들은 이미 임기의 절반인 2년을 넘겼다. 이들은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벌금 100만원)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잃게 된다. 이들 중 누군가 2년 이상 선량(選良) 행세를 하면서 세비를 챙긴 ‘무자격 국회의원’으로 판명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은 서둘러 판결기일을 잡아 무자격자를 가려내야 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당사자들의 정치생명이 달려 있어 치열하게 다투기 때문에 충분한 심리를 위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 대법원 스스로 지난해 3월 선거사범 전담재판부 회의를 통해 “선거사범 재판을 선거법이 규정한 기간 내에 마친다”는 선거재판 시행방안을 발표하지 않았던가.
대법원의 늑장 재판은 온갖 핑계를 대며 재판을 늦춰 당선무효가 확정될 때까지 가능한 한 오래 국회의원의 특권을 누리겠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부추기는 것이다. 지금처럼 재판이 늦어질 때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선거사범을 막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