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황두열/­˝웬 기름값이 이렇게 비싸요?˝

  • 입력 2002년 5월 17일 18시 24분


온 국민이 일념으로 경제성장을 꿈꾸던 60년대에 필자는 SK㈜의 전신인 유공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그 회사에서 34년간이나 일하고 최고경영자(CEO)에까지 올랐으니 직장인으로는 행복한 삶이었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동안의 직장 생활은 우리나라 경제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동고동락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절이었다. 이래저래 경력을 쌓아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다니는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정유업은 현재도 산업의 대동맥임에 틀림없지만 과거에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일구어내는 토대 그 자체였다.

그간 변한 강산만큼이나 우리 경제는 크게 발전했고 회사도 성장했다. 이와 함께 석유시장도 변했으며 경쟁은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치열해졌다.

보통 한 영역을 10∼15년 연구하면 박사가 되고도 남는다. 나처럼 한 업종에 30년 이상 몸담았으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어야 할 터인데 요즈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답답한 일이 한 가지 생겼다. 소비자, 언론, 심지어 가까운 주변 사람들조차 하나같이 기름값에 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올릴 때는 확 올리고 내릴 때는 왜 그렇게 주춤거리느냐, 선진국에 비해 무슨 기름값이 그렇게 비싸냐고 항의한다. 기름값에 약간의 변동이 생기기만 해도 왜 그리 비난을 해대는지 일일이 붙잡고 해명을 할 수도 없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신입사원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에 출장을 다녀온 선배로부터 그곳은 휘발유 값이 물값보다 싸더라는 말을 듣곤 했다. 당시에는 마치 천일야화(千一夜話)에 나오는 신기한 이야기 중 하나쯤으로 부럽기만 했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값이 바로 ‘물 쓰듯 쓴다’는 물값(생수값)보다도 낮아졌다.

그런데도 정유사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야단을 맞는다. 휘발유 소비자가격의 70%는 세금인데 말이다.

더구나 국내 석유시장은 더 이상 정유사들만의 과점시장이 아닌 완전경쟁시장이다. 주요 정유회사 외에도 40여개 석유수입업체가 난립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다. 정유회사가 시장을 무시하고 휘발유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국가 제일의 기간산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정유업계에, 그것도 국제석유제품가격이 오른 만큼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유가(油價)에 대해 과도한 부당이득을 취한다고 비난할 때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 동양 최대의 정유시설이 있다는 것에 감격해하던 우리 국민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무조건적인 애정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정유사들이 국가의 원동력인 주(主)에너지 공급원으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왔고 국가재정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 또 출혈경쟁의 와중에서도 고객에게 좀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몰두하거나 원유 확보를 위해 해외유전 개발에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진실’만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황두열 (주)SK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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