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시의 이런 '횡포'

  • 입력 2002년 4월 12일 18시 05분


서울시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놀랍다. 서울시가 노숙자 보호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민간기업으로부터 무상 임대한 땅과 시설을 계약 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2년 가까이 무단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땅을 빌려준 기업 측으로서는 좋은 일 하려다가 재산권 행사까지 심각하게 침해받은 셈이 됐으니 앞으로 누가 이런 일에 동참하겠다고 나설지 의문이다.

섬유업체인 ㈜방림이 문제의 영등포구 문래동 땅 2000여평을 서울시에 무상 제공키로 한 계약기간은 1999년 1월부터 2000년 6월까지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계약기간이 20여 개월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땅을 점유하고 있다. 서울시 측은 “현재 이 시설에 700여명의 노숙자가 수용돼 있으며 당장 다른 곳에 노숙자 시설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변명하지만 이는 그동안 시 당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음을 자인하는 것밖에 안 된다. 방림 측은 그 사이 5차례나 문서를 보내 반환을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묵살당했다고 한다.

더 한심스러운 일은 3월 초 방림 측이 이 땅을 모 건설업체에 매각키로 하고 재차 반환을 요청하자 서울시 측이 보인 행태다. 서울시는 3월 말 아파트 등 주택 신축이 가능한 땅이었던 이곳을 주거 및 상업시설을 지을 수 없는 ‘사회복지시설’로 용도 변경하는 도시계획안을 수립해 추진 중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측은 이 안이 승인되면 소유주 측과 협의해 땅을 사들이겠다고 하나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토지수용법에 따른 강제 수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사유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

민간과의 계약 내용을 지키지 않는 서울시가 시민에게 준법(遵法)을 강조한들 권위를 갖기는 힘들다. 이번 일은 또 서울시의 시대착오적인 행정편의주의를 보여준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민간기업의 선의(善意)가 이처럼 악용되어서는 앞으로 ‘시민과 함께 하는 행정’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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