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 15]호주 캔버라

  • 입력 2002년 4월 5일 19시 06분


'숲 반 도시 반'
'숲 반 도시 반'
《너무 불공평하다, 싶었다. 수 만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처녀림이 우거진 곳에 적당히 도로를 낸 뒤 예쁜 건물을 짓고, 도심을 관통하는 강 주변에 다리를 몇 개 놓은 것만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다니.

3월 말 ‘숲 속 도시(bush capital)’란 별명을 갖고있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인슬리 언덕에 선 기자는 이렇듯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캔버라는 서울시 만한 면적에 거주인구는 서울의 40분의 1 수준인 30만 명이 고작. 언덕 위에서 바라봐도 건물이나 도로보다는 나무와 숲이 눈에 더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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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심 한복판 국립 호주박물관에서 본 동영상에 담겨있는 100년전(1908년) 캔버라는 놀랍게도 헐벗은 황무지에 가까웠다. 나무는 별로 없이 푸른 초원이 구릉지에 퍼져 있었다. 그나마 양떼 숫자가 늘어나면서 흙 밭이 드러난 곳도 눈에 띄었다. 결국 ‘숲속 도시’는 인간의 땀으로 빚어낸 창조물이었던 것이다. 강으로 착각했던 것도 축구장 1100여개만한 크기의 인공호수였다.

캔버라 중심에서 15분 거리인 시립 야랄룸라 양묘장은 캔버라에 꽃과 나무를 공급하는 나무공장이다. 여기엔 은행나무 목련 자작나무 일본단풍 유칼리나무 등 1100종류의 꽃과 나무 5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나무들이 하나같이 ‘목걸이’를 달고 있다는 점. 목걸이엔 나무이름, 원산지, 성장기간, 성장했을 때 크기, 물주는 방법, 어떤 비료를 언제쯤 어떻게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등이 친절하게 적혀있다. ‘침엽수 전문가’란 명함을 건넨 마이클 키드(50) 소장은 “그냥 묘목을 시민들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양묘장은 캔버라에 집을 얻는 모든 신규 입주자에게 한국 돈 6만원 어치인 나무 10그루, 관목 40그루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는 “정치없는 캔버라는 상상할 수 있어도, 나무없는 캔버라는 견딜 수 없다”며 싱긋 웃었다.

캔버라는 실험도시다. 인류 최초로 계획된 생태도시를 만들겠다는 실험정신이 곳곳에 배어있다. 1913년 도시계획 국제 컨테스트를 개최해 전세계 137개 팀의 아이디어를 모은데서 실험은 출발한다.

개인의 토지소유는 철저히 금지된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정부소유 땅을 99년간 빌릴 수 있을 뿐이다. 또 건물주변 나무심기나 가정집 정원가꾸기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지름 1미터 이상 나무나 높이 12미터 이상인 나무는 나무 주인조차도 손대지 못하게 돼 있다. 앨리스 헤더 도시공원 관리국장은 “명문화된 규정이 많지 않아 공무원이 이것저것 요구가 많지만 ‘푸른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기업이나 시민들이 잘 따라준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달리다보면 유칼리나무 소나무 플라타너스가 빽빽이 들어찬 도심보다 나무 밀집도가 떨어지는 수수께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헤더 국장은 그 이유를 “시 외곽의 공원 및 가로수 정비에는 돈을 덜 썼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천혜의 환경이 아닌 다음에는 ‘돈을 써야’ 푸르름이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도시숲 가꾸는 예산은 시 정책상 우선순위가 앞서는 탓에 늘 우선 배정된다.

캔버라는 도시전체 면적의 40%가 녹지다. 한국 기자의 눈엔 녹지조성이 완벽해 보이는 시드니 멜버른 등 다른 도시보다도 2배는 더 나무가 많은데도 녹지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 그런데도 왜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숲과 공원에 집착하는 걸까.

부활절 연휴 첫날인 지난달 29일 박물관 옆 공원에서 천주교 미사에 참석한 재너 존스 할머니는 “그럼 맨바닥이나 아스팔트에서 모임을 갖으란 말이냐”고 되물었다. 도시 어디를 봐도 바비큐굽는 곳, 자전거 전용도로, 럭비 크리켓 구장이 들어서 있다. 도시 안에 골프장만 9곳. 캔버라 시민에겐 잔디 나무 꽃이 일상에서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 돼 버렸다는 느낌이다. 골프장호주 캔버라시 산림국에에 파견중인 산림청 이창재 과장은 “취미란에 정원가꾸기를 적어넣은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도시가 숲속에 묻혀있건만 캔버라 숲 보호국의 관리매뉴얼 첫 장은 ‘더 푸르게 푸르게’를 강조하는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

“전신주를 집 뒤뜰 쪽으로 돌려서 시각효과를 높여라. 집 앞 담장은 녹지를 감추는 효과를 내니 가급적 없애라. 길거리엔 가급적 잎이 넓은 활엽수를 심어야 풍성해 보인다.…”

계획도시 캔버라는 이렇게 인간의 ‘숲을 가꾸려는 의지’와 더불어 푸르러가고 있었다.

캔버라(호주)〓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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