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슬픈 원시림´

  • 입력 2002년 3월 22일 17시 27분


숲벤 자리에 인공조림
숲벤 자리에 인공조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중부 칼리만탄주.울창한 원시림으로 ‘아시아의 허파’로 불렸던 그곳에는 더이상 ‘고요한 밀림’이 없다. 화전개발과 산불이 밤낮으로 일어나고 토착민과 이주민, 정부와 자본의 이해가 뒤엉켜 합법 불법의 벌채가 마구잡이로 이루어진 결과다. 칼리만탄주 주도격인 팡갈란분에서 소형비행기로 1시간40분을 날아간 뒤 열대림속으로 뚫린 비포장 임도를 따라 3시간반(130㎞)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오지 ‘페르기’. 한국계 벌채회사인 코린도(KORINDO)사의 조림지 캠프가 있는 곳이다. 지프가 임도를 달리는 동안 주변에서는 숲이란 걸 찾을 수 없었다. 간혹 농지로 개간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잡초가 무성한 버려진 땅들. 때때로 조악하게 자른 나무들을 한짐씩 실은 트럭을 만날 수 있었다. ‘도벌꾼들의 트럭’이란 현지인의 설명이다. 칼리만탄 지역에서만 도벌꾼 수천명이 떼지어 다니며 밤낮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있으나 감독의 손길은 전혀 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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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까지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의 빽빽한 원시림을 자랑하던 칼리만탄섬이 이런 상황에 이른 배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펼친 산림개발정책과 인위적 이주정책이 있다. 수하르토 정권은 전국의 산림을 국유화하고 외국 기업들에게 마구잡이로 벌채권을 불하해줬다. 부패와 이권의 반대급부로 ‘검은 돈‘들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다.

한때 전세계 열대우림의 10%, 아시아지역 열대우림의 40%를 보유했던 인도네시아지만 지금은 전체 열대림(1억2040만ha)중 36%인 4340만ha가 이미 황폐해졌으며 해마다 강원도보다 큰 면적인 150만ha 정도가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도벌꾼 트럭
숲의 대부분이 국유림인 보르네오섬에서는 조직적인 도벌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진다. 정부의 감시감독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칼리만탄주 곳곳에서 대낮에 몰래 베어낸 나무를 싣고 가는 도벌꾼들의 트럭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칼리만탄에는 처음 일본기업들이 진출해 굵직한 나무들을 베어갔고 다음엔 코데코, 코린도 등 한국기업이 진출했다. 일단 벌채가 시작되고 임도가 뚫리자 도벌꾼들이 조직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무법지대였다.

정권이 수도가 있는 자바섬 일대의 인구 과밀과 경제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70년대 이래 벌인 반강제적 이주정책도 땅의 황폐화에 기여했다. 자바섬과 마두라섬 등에서 몰려온 이주민들은 벌채가 끝난 자리에 불을 지르고 농사를 짓다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숲과 사람의 운명은 불가분의 관계일까. 밀림이 훼손된 곳에서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이곳의 원주민 수디르 만또씨(42)에게도 독침을 불어 새를 잡고 창을 던져 사냥을 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삶은 선조들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는 몇 년전부터 코린도의 현장 캠프 경비대장으로 일한다. 제복을 입고 27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회사내 치안을 유지하는 게 그의 업무다.

그의 형제 2명도 코린도사에서 일한다. 칼리만탄에서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몇 안되는 길인 회사 취직은 종족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은 화전을 하거나 조금씩 생겨난 마을에서 장사를 하기도 하지만 생활은 늘 어렵기만 하다”고 전한다.

나무 한그루마다 신이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밀림 파괴는 생활 터전이 사라지는 것 이상으로 전통문화와 정체성의 파괴를 뜻했다.게다가 지난해 2월에는 이곳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에 종족분쟁마저 발생해 대량 학살과 방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인 10여명이 원주민 인부 수천명을 관리하는 페르기의 코린도 캠프는 2년 전부터 벌목 대신 인공조림을 시도하고 있다. 아름드리 거목들을 베어낸 자리에 새로운 숲을 가꾸는 것이다.

산림훼손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90년 산림법을 개정, 외국기업들에게 벌채권을 줄 때 동시에 조림을 할 것을 요구했다.그러나 일본 독일 등의 벌목회사들은 벌채 조건이 까다로워지자 철수하는 길을 택했다.

코린도사는 98년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45년 기한의 조림허가를 받아 황폐해진 칼리만탄 중부 9만2150ha에 5년 뒤 펄프용재로 사용할 유칼립투스, 아카시아나무 등을 심고 있다. 지금까지 조림한 면적이 1만1000여ha. 연간 6000ha씩 조림을 계속할 예정이다.

과거의 숲이 자연밀림이었다면 이들이 만드는 숲은 산업용 자재를 생산하는 ‘밭’과도 같다. 더이상 손쉽게 벌목할 곳이 남아있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목재를 직접 키우는 것이 경제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 파견된 산림청 이장호(李章浩) 임무관은 이같은 시도를 “유한한 숲을 무한하게 사용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이라고 말했다.

칼리만탄(인도네시아)〓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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