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마사회 해고자들의 눈물

  • 입력 2002년 3월 21일 18시 35분


한국마사회가 1998년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위해 작성한 ‘정리 대상 내역서’를 보면 구조조정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뤄졌는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업무 추진력, 성실성 등 겉으로 내세운 기준과는 달리 직원들의 정치 성향과 출신 지역 등이 ‘실질적인’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강제해직된 해고자들은 “부당하게 잘렸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며 “이 문건의 공개로 그동안 받은 차가운 시선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 해고자는 “사회적 무능력자라는 낙인과 경제적 어려움, 가장으로서의 권위 실추 등으로 인해 정말 견디기 힘든 세월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이들 대부분은 부인이 카드 외판원이나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벌어오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또 4년 가까이 계속된 ‘부당해고 구제 소송’으로 수천만원씩의 빚을 졌는가 하면 공공근로를 통해 자녀들의 학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해직 후 지병으로 사망한 한 해고자의 자녀들은 지금 1년씩 번갈아가며 대학을 다니고 있다. 한 명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다른 한 명은 휴학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음해 다닐 학비를 버는 식이다.

부실한 공기업을 개혁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감축하는 것은 어느 때고 필요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당시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던 때라 인력 구조조정 자체는 어쩔 수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공적인 구조조정’ 등의 화려한 실적 홍보 뒤에 마사회의 구조조정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다면 결코 성공한 구조조정일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마사회 수뇌부에 의해 이뤄진 정치적 구조조정은 살아남은 직원은 물론이고 조직 자체에도 심각한 고통과 갈등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당시의 구조조정을 ‘점령군처럼 직장을 유린했다’고 표현한 마사회 현직 직원들의 21일 양심선언문은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진구기자 사회1부 sys120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