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칼럼]"그때를 아십니까?"

  • 입력 2002년 2월 25일 13시 39분


시대를 거슬러 올라 지난 2000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의 현장으로 날아가보자.

시드니올림픽 대회첫날 첫금메달이 주인공이 결정되는 9월16일 여자공기소총 개인전에서 무명의 19세 여고생 강초현이 본선 1위로 올라 결선에 올라 한국팀에 첫 금메달의 기쁨을 안겨줄듯 했다.

마지막 한발의 격발을 남겨둔 강초현은 상대 선수가9.9점을 얻어 0.2점차로 뒤진 상황이였고, 0.2점이상만 더 얻으면 감격의 금메달을 얻을수 있는 순간이였다.

그러나 신의 손길은 강초현을 외면했고, 강초현은 상대선수보다 0.2점 뒤진 9.7점을 기록했거,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던 강초현의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했고, 통한의 고개를 떨구었다.

이 광경을 멀리 고국에서 지켜보던 모든 국민들은 안타까움에 아쉬움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시상대에 올라 관중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강초현의 모습에 모든 국민은 금메달을 따지못한 실망감을 모두 떨쳐버리고 감동에 환호를 짓는다.

19살의 소녀의 몸으로 세계최고의 선수들과 당당히 싸워 은메달의 영광을 얻은 강초현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실망감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표정이였고, 국민들 또한 금메달보단 최선의 경기를 펼친 강초현의 당당한 모습에 감격했다.

이후 2000년 시드니올림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경기가 끝나고 모든 매스컴이 강초현의 집과 강초현의 일대기를 집중조명했고, 금메달에 버금가는 연금지급을 약속하는 업체를 비롯, 대학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던 강초현에게 장학금지급을 하는등 각계각층의 격려와 관심은 기대이상이였고 강초현 신드롬이라는 신종어까지 나타나게 된다.

강초현은 한순간 스타가 되었고, 덩달아 비인기종목에 국한되었던 사격 또한 국민들의 최고 인기종목으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강초현을 영입한 갤러리아 사격단을 포함 실업팀 3팀이 동시에 창단되었고, 신생 대학팀까지 가세하며 IMF이후 줄줄이 팀의 해체로 줄어만 가던 선수층이 두터워지기 시작하고, 지원 또한 강화되며 새로운 도약을 맞는다.

그러나 강초현 신드롬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들의 기억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해 5월 강초현 신드롬을 등에 업고 국내유일의 국제대회인 2001서울월드컵 국제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대했던 사격계는 국민들과 언론의 철저한 무관심속에 외면당하고, 이후 계속되었던 2001밀라노월드컵국제사격대회등을 관심있게 지켜본국민들은 없었다.

다시 시간을 앞으로 돌려 2002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오심과 편파 판정등 불운이 겹쳐 성과를 얻지 못한 쇼트트랙의 김동성은 국민들의 성원과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동계올림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고 김동성 신드롬이 일고 있다.

시드니올림픽 당시 강초현이 은메달을 땄을때의 상황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각계각층의 성원과 지원, 국민들의 관심등이 뒷따르고 있고 쇼트트랙에 대한 관심 또한 대단한 열기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일시적인 현상이라 본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사격의 강초현이 기억속에 사라졌듯이 쇼트트랙의 김동성 또한 사라질 것이다.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은 김동성과 쇼트트랙, 강초현과 사격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다면 강초현이란 소녀가 0.2점차로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다는 것과 김동성이란 선수가 한국쇼트트랙이 반칙과 오심을 당했다는 정도의 사건만을 중요시할 뿐이다. 그리고 사건 당사자들을 이용할뿐...

[제공 : http://www.entersport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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