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방송위원장 왜 못찾나

  • 입력 2002년 2월 15일 19시 41분


“이제는 김정기(金政起) 전 위원장이 다시 돌아와도 받아들일 것 같다.”

최근 방송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지난달 17일 사퇴한 김 전 위원장의 후임 인사가 한달이 다 되도록 감감 무소식이기 때문이다. 방송법에도 사퇴후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임하도록 돼있다. 김 전 위원장 사퇴이후 “정치권 인사는 안된다”며 다섯 차례나 성명서를 낸 방송위 노조도 최근 들어 손을 놓고 있을 정도다.

후임 인사로는 그동안 10여명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며 엎치락뒤치락 했다. 변호사 A씨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만나 고사의 뜻을 전했다는 얘기가 있고, 한 언론인은 현직 지상파 방송사 사장에 의해 천거됐으나 중도 탈락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문제는 정권의 속셈이 어떻든 방송위 수장의 ‘빈 자리’로 인해 방송 정책의 혼선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을 앞두고 선거 방송의 방향타를 잡아야할 방송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특히 방송사들은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의 토론 등을 방영하면서 과열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의 사퇴를 유발한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전송이나 경인방송의 권역외 재송신 문제도 아직 공중에 떠 있는 상태다. 방송위가 지난해 11월 채널에 관한 결정을 내렸으나 위성방송이나 경인방송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조속히 혼선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쯤 되니 정치권의 ‘주판알’이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방송사를 잘 ‘조율’할 수 있는 인사를 찾는 데 모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위 노조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측에서 방송가의 진을 뺀 후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낙점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아직도 방송을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방송가에서는 요즘 은밀하게 “누구는 누구누구에게 줄을 섰다더라”는 얘기도 흘러 다닌다.

이승헌 문화부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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