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코스모크래츠(cosmocrats)

  • 입력 2002년 2월 6일 17시 51분


서울의 외국기업이나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은 비록 인종이나 국적은 달라도 그들끼리 통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이중엔 한국인 혈통으로서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그들을 한국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이고 학교는 홍콩 미국 영국에서 다녔다는 사람. 아시아의 혈통에 유럽의 문화적 전통과 미국식 경영마인드를 가진 그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 게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어느 학자는 이런 ‘국제족’들을 가리켜 코스모크래츠라고 불렀다. 이 말은 존 미클레스웨이트와 애드리언 울드리지가 쓴 ‘미래의 완성’이라는 책에 처음 등장했다. 저자는 세계 초일류 미디어, 첨단 기술사업, 법률회사, 비정부기구, 유명 컨설팅회사 등의 전문직에서 일하면서 세계각지를 국경없이 넘나드는 엘리트들을 코스모크래츠라고 정의했다. 세계적인 정보통신잡지인 인더스트리 스탠더드는 작년에 한국인 소니아 노씨를 코스모크래츠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외교관의 딸로 태어나 이란 브라질 호주 아르헨티나 미국 등에서 살며 7개 국어를 익힌 그는 스탠퍼드대학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했다. e조카닷컴이란 회사를 설립한 그의 사무실은 런던. 다양한 배경을 가진 53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요즘 우리 주위엔 이런 코스모크래츠들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물론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외국 자격증 취득 바람이 불고 있다. 경영학석사(MBA) 미국 공인회계사(AICPA)는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이제는 미국 홍보전문가(APR) 재무분석사(CFA) 등의 자격증이 인기다. 대우가 좋은 외국기업 등에 취업하기도 쉽고 ‘몸값’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 해외유학을 가는 사람이 많으니 앞으로 코스모크래츠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서울에 있는 코스모크래츠들이 정작 세금을 내는 곳은 서울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일은 서울에서 하되 적(籍)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두고 세금을 낸다는 것이다. 이유는 세율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사정을 한국인만큼 잘 아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제프리 존스 회장은 “한국의 소득세율이 외국에 비해 너무 높아 다국적기업들이 지역본부를 한국으로 옮기기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한국은 코스모크래츠들이 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합법적인 병역기피’를 선택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수 유승준씨도 코스모크래츠일까.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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