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퇴근 안하는 장관

  • 입력 2002년 2월 5일 18시 23분


직장 상사의 리더십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우선 ‘똑부형’,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스타일이다. 다음은 똑똑하지만 게으른 ‘똑게형’이고, 멍청하면서 부지런하면 ‘멍부형’, 마지막으로 멍청하면서 게으르기까지 하면 ‘멍게형’이라는 얘기다. 이 가운데 부하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사는 누구일까. 정답은 ‘똑게형’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바로 해답을 제시해주지만 평소에는 잘 나서지 않고 부하들에게 일할 기회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가장 싫어하는 상사는 ‘멍부형’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데나 나서는 바람에 일을 엉망으로 그르치는 타입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얼핏 우스갯소리 같지만 가만히 음미해보면 그 비유의 절묘함이 놀랍다.

▷그런가 하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맹주들의 캐릭터로 분류하는 리더십도 있다. 비정하리 만치 공과 사를 구분한 ‘조조형’, 무능하지만 포용력으로 인재를 끌어안은 ‘유비형’, 부하를 믿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손권형’, 그리고 우유부단하면서 잔머리에는 능한 ‘원소형’이 그것이다. 굳이 갖다 붙인다면 조조형〓똑부형, 손권형〓똑게형, 유비형〓멍게형, 원소형〓멍부형쯤 되지 않을까.

▷이태복(李泰馥)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 후 내내 장관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아예 사무실에 간이침대와 전기난로까지 들여놓고 오전 1시가 지나 잠자리에 들어 6시엔 어김없이 일어난다는 게 측근들의 말이다. 산적한 현안과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장관 취임 전 대통령복지노동수석을 1년 가까이 지냈으니 복지부 업무에도 어지간히 밝을 이 장관이다. 그런데도 아예 퇴근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건강보험재정, 의약분업 건으로 ‘동네북’이 되다시피 한 직원들을 다잡기 위한 ‘충격요법’으로 봐야 할까.

▷어쨌든 복지부 직원들은 요즘 ‘죽을 맛’일 게다. 이 장관은 “신경 쓰지 말고 퇴근하라”고 했다지만 부하 입장에선 그게 어디 무심히 넘길 일인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8년 가까운 수형 생활을 한 이력 때문에 가뜩이나 긴장해 있던 터에 아예 장관실에 잠자리까지 폈으니 주눅이 안 들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의 파격행보를 놓고 ‘너무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기에 오래 계속할 일은 아닌 듯 싶다. 자칫 부하들에게 한물 간 리더십으로 비쳐지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대부분 조직에서는 ‘똑부형’보다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똑게형’의 윗사람을 더 따른다고 하지 않는가.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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