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24시]흔들리는 부장님③/"실수는 안돼"전쟁같은 나날

  • 입력 2002년 2월 4일 17시 23분


자영업자만큼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직장인은 나름의 보람과 꿈이 있다. 회사나 업계, 나아가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큰 물’에서 일하는 보람,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기쁨 같은 것들이다.

부장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자리다. 부장에서 임원 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일. 예전엔 ‘만년 부장’이란 것도 있었지만 요즘은 밑에서 치받는 젊은 세력이 많아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다. 전직(轉職)을 하거나 창업하기에도 늦은 나이.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이 되거나 부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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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의 부장들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할 여유도 없이 동분서주한다. 하나의 조직을 책임지는 소사장인 부장. 실질적인 성과로 회사에 기여해야 한다. 그만큼 업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 과장까지는 잘못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부장의 사전에 실수란 없다.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서 부원들을 통솔하는 데 들이는 노력이 만만치 않다. KT 법인영업단의 박윤영 부장은 일과의 대부분이 부원들과의 업무 대화, 고객들에 대한 대응으로 꽉 찬다. 혼자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기술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이 분야에서 최신 기술동향을 모르고는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8비트 컴퓨터 시절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최근의 정보기술(IT)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 새벽과 밤에 인터넷 사이트를 뒤진다.

반면 부원들에게 부장은 ‘하늘 같은’ 존재다. 과장하고는 노래방 영화관 술집에 같이 가도 부장과는 공식 모임 외에 만나는 것을 꺼린다. 서울 강남의 어떤 단란주점은 심지어 출입에 나이제한이 있어 박 부장을 더 서럽게 한다.

이래저래 부장은 외롭다. LG전자의 권경인 부장은 퇴근 후 동양사상에 관한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하루종일 기술 관련 회의와 대외 협상을 하고 나면 아무리 엔지니어지만 ‘머리에 쥐가 나는’ 느낌을 받는다. 노자철학과 한시(漢詩)를 읽으며 그는 몸과 마음을 맑게 한다.

신세계 홍보팀 박찬영 부장은 새해들어 매주 2번 드럼을 배우러 간다. 오전 8시반부터 저녁까지 자신과 눈 한번 마주치기 위해 줄서 있는 부원들과, 밀려드는 결재서류….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그는 드럼을 두드리며 혼자 스트레스를 푼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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