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유환/통일전략, 북에 말려들었나

  • 입력 2002년 1월 8일 18시 03분


북한은 새해 들어 6·15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하면서 민족공조 실현, 북한 주적론 철회, 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 연일 대남 통일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우리 민족끼리 조국을 통일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사대와 외세의존을 배격하고 민족공조를 실현할 것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6·15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이정표’라고 하면서 민족자주의 원칙에 따라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을 실현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평양방송은 7일 남북이 6·15공동선언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한 것은 곧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6·15선언은 연방제 지향?▼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해석상의 이견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던 남북한 당국이 공동선언에 대한 이견을 노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남북관계가 정체되면서부터다.

북한은 지난해 8월 4일 발표한 ‘모스크바선언’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남조선에서 침략군을 당장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공동선언 제1항에서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명시한 것이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한 것은 아니라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북한 당국이 평양방송을 통해서 “공동선언은 북과 남이 연방제 통일을 지향해 나갈 것을 밝히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과거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수정하여 우리의 ‘연합제 통일방안’을 수용한 것이라고 한 우리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6·15남북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과 북은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남측의 연합제와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과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본질적인 공통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데 있어 중간기착 지점에서 만난다고 하여 같은 길을 간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길을 함께 가는 것은 어느 한 쪽이 자기의 목적지를 바꾸거나 양측이 제3의 길을 가기로 합의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남북한이 각각 지향하고 있는 이념과 체제를 포기할 의향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남북한 각각의 국가 또는 정권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목적지향이 서로 다른 남북한이 내놓은 각각의 통일방안에서 공통성을 인정한 것은 통일방안의 공통성에 대한 합의라기보다, ‘공존의 원칙’에 남북정상이 합의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은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등 합의문을 만든 이후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6·15공동선언의 내용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북한은 1월 4일자 노동신문에서 “남북대화의 역사는 민족끼리 아무리 통일을 위한 좋은 합의를 이루어냈다 하더라도 외세에 의존하면 그것이 빈 종잇장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주장, 남북 간 합의가 이행이 되지 못한 주된 이유를 남한의 ‘외세의존’에서 찾고 있다. 이는 아마도 6·15공동선언이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남북관계의 정체에 대한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부, 北의도 파악 못해▼

한편, 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우리 정부들은 북한이 제시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등 ‘조국통일 3대 원칙’의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한 가운데 이를 수용해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북측이 주한미군을 배격하지 않은 가운데 통일을 실현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것이 남북한 당국의 통일원칙과 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분단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통일은 ‘방안’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통일 방안이 우수한 쪽보다는 전략이 우수한 쪽이 목적을 달성한다는 역사적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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