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서경석/증권사, 투자은행化 서두르자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7시 30분


올 여름에 발표된 매킨지의 한국경제 보고서는 향후 국내 금융시장이 예금과 대출을 근간으로 하는 간접금융시장보다 주식 채권 등 위험자산을 통해 자금 중개가 이뤄지는 직접금융시장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이 되면 간접금융시장은 현재와 비슷한 900조원 규모에 그치는 반면 주식시장은 6배인 1800조원, 채권시장은 2배인 900조원 수준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망은 금융시장의 핵심 플레이어가 기존의 ‘상업은행(Commercial Bank)’에서 ‘투자은행(Investment Bank)’으로 바뀔 것임을 의미한다. 단순히 증권을 인수하고 중개하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각종 새로운 증권상품과 금융서비스를 개발하고 자기 자금으로 투자위험을 감수해 수익을 만들어 가는 금융기관이 향후 금융시장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역량을 갖춘 금융기관이 지금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새 상품을 개발하고 투자위험을 감수하면서 시장을 조성하는 역할은 증권사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국내 증권산업은 주식 위탁거래 업무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물론 과거에 비해 인수 및 자산유동화 업무 등 기업금융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미미하다.

주식 위탁거래시장은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완전경쟁시장’에 가깝다. 기업의 초과이윤이 점차 소멸되는 완전경쟁시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증권거래의 온라인화와 경쟁적인 수수료 인하로 위탁매매 업무를 통한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위탁거래는 자산관리업과 함께 증권사들의 중요한 업무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위탁매매와 자산관리를 기반으로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 업무영역의 개발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투자은행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풍부한 경험과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를 갖춘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국내에 본격 진출할 경우 일본의 경우처럼 시장의 대부분은 외국계 몫이 될 것이다.

한국은 아직 시장규모가 작아 외국계 증권사의 본격적인 진출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커지면 외국계 투자은행들의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고 현재와 같은 국내 금융기관의 경쟁력으로는 한국 시장도 외국계의 수중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체 자금조달이 가능한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투자은행 업무를 확대할 수 있도록 관련규제를 완화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투자은행의 업무를 수행하다가 발생할 투자위험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몇몇 대형 증권사들의 위험관리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선진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계 금융기관과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도 내부의 준비가 어느 정도 돼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서 경 석(LG투자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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