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외교부의 자리 늘리기

  • 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32분


중국 정부의 한국인 마약사범의 처형사건 때문에 국제적 망신을 톡톡히 당한 외교통상부는 요즘 민관 합동의 외교업무개선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 ‘외교역량 강화방안’을 수립하느라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1일 특위 첫 회의에 제출된 외교부의 자체 검토안을 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을 떨쳐내기 어렵다. 외교부 서열 4위에 해당하는 영사 담당 차관보 자리를 하나 더 만드는 방안에서 테러전담 대사직과 유엔국 신설 방안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자리 늘리기’ 구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현재 1500여명인 외교부 인력을 5년 내 2000명, 10년 내 30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대목에 이르면 현 정부가 천명한 ‘작은 정부 구현’ 원칙을 외교부는 아예 망각했거나 무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정권 말기라고 하지만 이는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재외공관 근무 경험이 있는 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는 “망신외교를 계기로 영사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면 해외공관의 근무 시스템을 바꾸는 등 소프트웨어 강화 방안이 선행돼야 하는데 그보다는 조직을 키워보자는 게 외교부의 의도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실 외교부는 80년대 초반 5공화국이 출범한 뒤 인력과 조직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슈퍼 외교부’ 창설을 추진하다 관련 부처와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자 슬그머니 계획을 철회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정부 내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 개편 문제가 대두된다는 점을 감안, 외교부가 미리 ‘감량까지 계산한 몸집 불려놓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오죽하면 진념(陳稔) 경제부총리가 3일 기자회견에서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을 늘려야겠다고 하는 것은 과거의 아날로그적 사고 방식”이라며 “외교부는 기존의 인력을 활용해 업무를 해나가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을까.

이종훈<정치부>taylor5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