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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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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선수 쌍둥이 아들을 둔 신영숙씨(51)의 심정도 꼭 그랬다.
5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형 조상현(25)은 SK 나이츠에서, 동생 동현은 SK 빅스에서 뛰고 있다. 대전중고와 연세대를 거치면서 한솥밥을 먹었던 둘은 프로에서 처음으로 코트를 마주한채 싸우고 있다. 게다가 두 팀은 같은 SK계열이어서 ‘한 지붕 두 가족’인 셈.
쌍둥이 아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늘 경기장을 찾는다는 어머니 신씨는 형제가 대결을 벌일 때면 가슴이 새카맣게 탄다. 남들은 ‘누가 이겨도 좋겠다’는 말을 하지만 둘이 몸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볼 수 없어 그만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 그런 신씨를 빅스와 나이츠의 시즌 2차전이 열린 2일 부천체육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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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밍업〓두 아들보다 먼저 경기장에 도착한 신씨는 “오늘은 상현이네가 좀 이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은 동현에게 더 큰 응원을 보냈던 게 사실. 농구를 본격 시작한 대전중학교 때부터 동현은 늘 형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상현이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릴 때 동현은 식스맨 신세를 전전했다. “상현이는 어릴 때 장사 소리를 들었지만 선천성 천식에 시달린 동현이는 잔병치레가 심했어요.”
상현은 유별나게 힘이 좋아 초등학교땐 씨름을 해보라는 권유까지 받았단다. 반면 성장속도가 늦은 동현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형보다 10㎝나 작았다. 60년대 배구선수로 활약한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듯 타고난 운동감각까지 지닌 상현은 탄탄대로를 걸었고 동현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프로에서도 지난 시즌까지 상현의 나이츠가 동현의 빅스와 10차례 맞붙어 모두 이겼다. 엄마로서 안쓰러운 생각에 동생 편을 들어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빅스가 나이츠에게 처음으로 이기더니 팀순위에서도 1위를 달리면서 동현의 표정에도 활기가 넘쳤다. 반대로 상현은 연패를 밥먹듯 하며 팀 성적이 하위권을 맴도는 바람에 애를 태웠다. 따라서 이날만큼은 기운이 빠져있는 형이 좀 웃었으면 했던 것.
▽점프볼〓어머니 신씨의 바람대로 상현을 앞세운 나이츠는 이날 경기에서 3쿼터까지 리드를 잡아 승리를 눈앞에 둔 듯 했다. 두 아들이 맞붙을 때는 포지션이 겹쳐 수비와 공격에서 서로 자주 부딪쳐 안타까움이 컸다. 다행히 이날은 동현이 형 대신 나이츠 하니발을 주로 맡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4쿼터 초반 동현이 속공 찬스에서 질풍같이 코트를 내달려 레이업슛을 쏘았고 바로 뒤에 상현이 쫓아왔다. 상현은 파울이라도 해 득점을 막았을 법했는데 그냥 놓아두었다. 신씨는 “아마 동현이가 거꾸로 그런 상황을 맞았다면 형의 공격을 막기 위해 무슨 수를 다 썼을 것”이라고 했다. 후보였던 때가 많았던 동현이 승부근성과 오기로 똘똘 뭉쳐 있는데 반해 상현은 낙천적이고 여유가 있다는 게 신씨의 설명. 4쿼터 후반에는 공격하던 상현이 착지를 하다 발목을 접질려 코트에 쓰러졌다. 이를 보던 어머니의 안쓰러운 얼굴이 전광판 화면에 실렸고 동현은 형에게 걸어가 상태를 물어보며 일으켜 세운 뒤 엉덩이까지 두드려 줬다.
▽승자와 패자〓승부에서 양쪽이 모두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4쿼터 역전극을 펼친 빅스가 나이츠를 다시 꺾었다. 공격과 수비에서 수훈을 세운 동현에게는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고 상현은 고개를 떨군 채 라커룸으로 향했다.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게 된 신씨는 이 때가 가장 괴로운 순간이라고 했다. 생활설계사로 일하다 두 아들이 프로에 뛰어든 99년부터는 일을 그만두고 전국을 돌며 경기를 관전하다보니 이젠 농구 전문가라도 된 듯 하다.
“빅스가 맥도웰 문경은이 들어오면서 전력이 안정된 것 같고 3쿼터까지 조금 뒤지더라도 선수들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나이츠는 뒷 멤버가 별로 안 좋고 상현이도 제몫을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살아나겠죠.”
실제로 조동현은 “지난 시즌까지는 역전패가 많았지만 올해는 언제든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조상현은 “아직 시즌 초반이므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자신했다.
한달여 만에 맞은 3식구의 만남을 아쉽게 마감한 어머니 신씨는 “한 녀석은 웃고, 한 녀석은 우울해 하니 어쩔 줄 모르겠다”며 체육관을 떠났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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