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과학기술 인력이 없다(상)]공대 졸업생도 "증권사 갈래요"

  • 입력 2001년 12월 2일 17시 15분


서울과학고에서는 매년 2∼3명이던 의대 지망 학생이 올해는 10명 이상으로 늘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직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의대 지망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자연계 지망생 중에서도 기술개발에 몰두할 과학자가 되겠다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과를 선택한 서울 H고교 2학년 오모군(17·강동구 고덕동)은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의대를 가겠다고 하고, 보통 아이들은 요리사가 되겠다, 호텔경영을 하겠다, 춤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등 다양하다"고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73만8814명 중 자연계는 27%인 19만8930명. 인문계는 41만6484명으로 56%를 자치해 자연계의 두 배가 넘는다. 예체능계는 95년 9%에서 이번에는 12만3400명, 17%로 약진했다.

의대가 아닌 자연계를 지망한 학생들의 질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서울대 공대 이장무(李長茂)학장은 "학생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더 큰 걱정"이라 말했다.

▼싣는 순서▼

- <上>자연계 지망생이 줄어든다
- <中>산업현장 기술인력 태부족
- <下>좌절하는 기술공무원

올초 서울대가 자연대 신입생 3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학과목 능력측정 시험에서 불합격한 10% 가량의 학생 중 다수는 지난해말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이학장은 "기초가 되는 수학 물리학 등의 실력 차이가 너무 심해 정상적인 수업이 어려울 정도"라면서 "우열반제 도입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회가 풍요로워짐에 따라 이공계 기피 현상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서의호(徐義鎬)교수는 "라이프스타일이 선진국형으로 바뀌면서 화공약품 냄새를 맡으며 실험하려는 학생이 줄고 있다"면서 "공대 졸업생도 기술개발보다는 증권 애널리스트나 컨설턴트가 되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퍼져 이공계 대학생 50%가 인도 중국 한국 등 외국계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 서교수는 "한국의 대학과 연구소도 문호를 개방하고 국제화해 동남아 등 다른 나라의 우수 인재를 한국의 경제발전에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방대에서는 이미 연구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동남아 학생들을 데려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C대학 생명과학부 김모 교수는 "쓸만한 학생은 유학가거나 서울로 간다. 연구할 사람이 없어 동남아 학생들을 받아들여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학교 실험실에만 베트남인이 10여명, 중국인이 30∼40명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인력 양성과 기술 개발에 국가의 장래가 달려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인력의 공동화 현상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장무 학장은 "연구기관과 중소기업에만 해당되는 병역특례를 확대하고 이공계 대학에도 경영 법률 같은 과목을 개설해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익(崔在益) 과학기술부 기초과학인력국장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여성비율 목표제를 도입하는 등 여성과학자를 연구 인력으로 적극 끌어들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현재(李賢在)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은 "범국가적 대책 없이는 산업공동화 현상을 피할 수 없다"면서 "문과와 이과를 교차지원할 수 있는 현행 입시제도를 재검토하고 이공계 연구설비를 확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정부 차원에서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연수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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