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관료들 입때문에…”

  • 입력 2001년 11월 21일 18시 19분


국채 가격이 연 이틀 출렁거리며 금융시장이 불안해졌다. 20일엔 3, 5년 만기 국채가격이 폭등했으나 21일엔 개장 직후부터 채권가격이 떨어지기 시작, 결국 폭락세로 장을 마감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21일 하루에만 금리가 거의 0.1%포인트 상승한 셈”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국채시장의 ‘널뛰기장세’는 재정경제부와 청와대 고위 관료들의 합작품이다. 이기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21일 오전 한 조찬간담회에서 3·4분기(7∼9월) 경제성장률을 1.5% 이상으로 추정하고 4·4분기에도 3%대 고성장률을 전망했다. 반면 전날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한 외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1.3%는 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 언급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채권 딜러들의 호가(呼價)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성적표를 놓고 당국자들의 발언이 오락가락하면서 채권시장은 급매수와 투매장 사이를 오간 셈이다.

‘관례대로’ 성장률 통계를 발표해온 한은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3·4분기 추계 발표가 바로 다음날(22일)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우리가 발표할 추정치가 재경부와 청와대 추계와 달라지면 시장은 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며 정부 관료에 대한 원망을 숨기지 않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통계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지면 큰일인데…”라고 걱정했다.

정부 관료들의 김빼기 발언은 여러 차례 ‘전과’가 있다. 콜금리 결정 등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을 넘보는 발언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한다.

최고 권부인 청와대에는 정부 각 기관의 각종 정보보고가 모일 게 분명하다. 우수한 인력을 갖추고 방대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재경부가 ‘한은의 통계독점’을 견제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힘있는 곳에서 주문성 발언을 할 때마다 통계를 발표할 당사자들은 당혹스러워 한다. 미묘한 시기에 터져 나온 무책임한 발언은 시장, 정부, 중앙은행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박래정<금융부>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