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해리포터’와 카불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8시 38분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지구촌이 뜨겁다. 나흘 전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봉되자마자 수입 신기록을 세웠고 이후 매일 최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서 만도 상영관이 3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라는 표현이 오히려 미진하다. 해리포터의 인기는 4년 전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나온 4편까지 모두 47개 언어로 번역돼 1억1000만부가 넘게 나갔다니 ‘날개돋친 듯 팔렸다’는 설명으로도 부족하다. 성경과 ‘마오쩌둥(毛澤東) 어록’ 다음으로 많이 나갔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해리포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소년이다. 작고 비썩 마른 몸에 흐트러진 머리카락, 이마에 번개 모양의 흉터가 있는 그는 늘 헐렁한 차림에 부서진 안경다리를 테이프로 붙여 끼고 다닌다. 고아로 이모네 식구의 구박덩어리였던 그는 열한 번째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자신이 마법사 혈통임을 알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상상한 대로다. 마술을 익혀 부모의 원수인 마왕을 물리친다는 뻔한 스토리가 전부다.

▷‘피터팬’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이 영화에 빠지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른까지 덩달아 몸달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지겨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때문이리라. 별다른 감동도, 희망도 없는 일상에서 보면 동화의 세계야말로 신나는 탈출구가 아니던가. 모든 것이 가능한 열한 살의 세계, 그것은 모든 어른들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꿈의 세계’이기도 하다.

▷탈레반이 달아난 뒤 5년 만에 그저께 다시 문을 연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극장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탈레반은 1996년 권력을 잡은 이래 텔레비전은 물론 영화 상영도 철저히 통제해 왔다. 오랫동안 전쟁과 탈레반의 폭정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아프가니스탄 국민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인생의 잠재적 내용에 대해 꿈꾸어진 표현 수단’이라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카불 시민이 영화관으로 달려간 이유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영화를 통해서나마 지금의 고달픔을 잊고 그 옛날 평화롭게 양을 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일 게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